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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칼럼] '응팔' 못지 않는 아파트공동체아파트공동체 운동, 단지 울타리 넘어 바깥까지 확장돼야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 승인 2016.03.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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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응답하라 1988, <응팔>이 모두 끝났다. 최고 시청률 20%를 오르내리던 인기 드라마를 제 시간에 거의 보지 못해 겨울방학 시작하자마자 다시보기를 하면서 부지런히 진도를 쫓았다. 마지막 제20회는 가족여행 마지막 날 청산도 ‘느린 섬 여행학교’ 미술실 숙소에서 온가족이 둘러앉아 마침내 본방사수를 했다.

<응팔>은 나에게 마을공동체와 마을 만들기를 아주 쉽고 흥미롭게 가르쳐준 교과서였다. “그래, 우리가 이렇게들 살았지, 이런 게 사는 것 같고 사는 재미였지,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하면서 애태우기도 했고 소망을 꿈꾸기도 했다. 마지막 회 끝 장면은 퍽 애잔했다. 쌍문동 봉황당 골목은 그때 꼭 사라져야만 했을까? 집도, 길도, 마을도 정성껏 잘 고쳐 정봉이, 덕선이, 보라네 아이들이 지금 그 골목을 뛰어다니게 할 수는 없었을까? 지금 찾아가도 그 골목 그 사람들 다 볼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이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지금 그곳에서도 그때처럼 서로 오가고 주고받으며 살갑게 살고 있을까? 판교 어디 아파트에서 그렇게 살고 있을까?

옛날 골목동네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집을 드나드는 외통수 길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늘 오며가며 만나고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서로 모른 척 살 수도 없었다. 골목은 반쯤은 내 것이고 반쯤은 네 것이며 기실은 우리 모두의 공유공간이었다. 골목동네의 단독주택이 헐리고 다세대 다가구주택이 지어지면서 살가움은 줄어들었지만 골목동네의 정경은 그래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골목동네가 뭉텅뭉텅 지워지고 담장을 두른 아파트단지로 바뀌면서 확연히 달라졌다. 눈에 보이는 풍경도, 이웃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방식도.

1970년대 전체 주택의 1%도 안 되었던 아파트가 <응팔> 마지막 회의 배경이던 1995년에는 37%로 늘었고, 2010년에는 절반을 훌쩍 넘겼다. 아파트는 이제 서울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주거유형이 되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아파트공화국>이란 책을 쓴 것처럼 말 그대로 아파트 공화국에서 우리는 살고 있고 아파트는 점점 더 늘고 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아파트에서도 <응팔>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까?

“12층에 이사 왔어요. 자기소개입니다. 힘세고 멋진 아빠랑 예쁜 엄마와 착하고 깜찍한 준희, 귀여운 여동생 지민, 저희는 16일 날 이사 왔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206호 사는 준희 올림.” 2011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청주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예쁜 편지글이 붙었고, 곧이어 답장을 담은 포스트잇들이 엘리베이터 벽을 가득 채워갔다.

“준희야, 이사 와서 반가워. 앞으로 보면 인사하고 지내자. 항상 웃는 얼굴로. 605호 아줌마” 새 아파트에 이사 온 준희가 내민 작은 손길은 서먹서먹하게 지내던 아파트 같은 라인 주민들에게 서로 인사 나누고 말을 건넬 계기를 만들고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3년간 에너지절약운동을 해서 아낀 돈 4억 원으로 아파트 경비원의 임금을 15% 인상해주었다. 또 경비원 구조조정 찬반의견을 묻는 안내문 옆에 경비원의 숫자를 줄이지 말자며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내건 편지글을 계기로 소자보 물결이 번져가 경비원 감축을 막았던 고양시 호수마을 4단지 아파트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인 <응팔 아파트>들을 목격한다. 아파트에서도 이런 공동체 운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2012년부터 마을공동체 사업을 적극 지원해오고 있는 서울시는 올해에는 아파트공동체에 더욱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단독주택과 다세대 다가구주택 동네에서 주민들이 오래된 집과 길과 마을을 고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도와드리듯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민들의 불편을 덜고 필요한 활동과 장소를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곳들이 늘고 있고, 오래된 아파트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놀이터, 외부공간, 옥상, 지하공간 등을 지혜롭게 고쳐 필요한 공간으로 고쳐 쓰는 ‘아파트 리디자인(redesign)’ 사례들도 많다.

아파트공동체 운동은 단지 안에서도 필요하지만, 단지 울타리를 넘어 바깥까지 확장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담을 치고 그 안에서 우리만 끼리끼리 잘 사는 ‘닫힌 공동체(gated community)’가 아닌 열린 공동체, 포용적인 공동체가 되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사통팔달 열린 길로 마음껏 오가던 단독주택 동네가 재건축 되면서 거대한 옹벽으로 둘러싸인 성채처럼 길을 막고 선 모습을 보면 도시 속 암덩어리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 섬뜩하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3학년 학생들의 지난해 <마을 만들기 융합스튜디오> 작품들 가운데 아파트 단지 경계를 넘어 이웃 마을까지 품는 열린 공동체를 꿈꾼 작품이 있었다.

<이산주민 상봉작전>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성북구 정릉1동 언덕 위 ‘키 큰 마을(재건축 아파트단지)’과 바로 아래 ‘키 작은 마을(저층주거지)’ 주민들이 서로 만나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발랄한 아이디어들을 보여준다. 윗마을 거대한 옹벽 안 지하공간에 작은 도서관을 비롯한 많은 공간들이 있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사용하지 않아 방치되어 있고, 아랫마을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줄어 빈집들이 늘어가고 있는 문제를 함께 묶어 풀어보자는 것이다. 두 마을 주민들이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옹벽 안 빈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함께 활용하여 수익을 내고, 아랫마을 빈 점포는 소상공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업사이클센터로 고쳐 아파트주민들도 내려와서 DIY, 리폼, 리사이클 활동을 함께 하잔다.

성북구청에서 기회를 내어주어 구청장님과 과장님, 동장님들 모시고 학생들이 직접 작품발표까지 했었는데 학생들이 제안한 깜찍한 아이디어들이 꼭 실현되면 좋겠다. 서울의 아파트단지들에서 공동체 활동들이 꿈틀꿈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해가 되면 좋겠다.

<이 글은 서울시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내 손안에 서울’에 게재된 글입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jerome363@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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