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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칼럼] 따로국밥 같은 도시, 섞어찌개 같은 도시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 승인 2016.05.1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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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역에 공업·상업용도 섞어 아파트 상가건물 따로 짓지않고 길따라 늘어서게

퇴근시간 이후 쓸쓸한 오피스텔 밀집 업무지구, 사람들 북적대는 활기찬 밤거리로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같은 사람도 시시때때 입맛이 변한다. 오늘 저녁엔 무엇이 끌리는가? 정갈한 따로국밥인가? 뜨거운 설렁탕 국물에 밥 말아 내온 푸짐한 국밥인가? 아니면 이것저것 두루 넣어 팔팔 끓인 섞어찌개인가? 제각각 고유한 맛을 음미하려면 섞지 말고 따로 먹을 일이고, 오묘하게 섞이는 조화를 맛보려면 섞어 먹는 게 좋을 것이다. 밥 한 술 뜨고 반찬 하나씩 올려 먹는 그 맛도 있고, 커다란 그릇에 온갖 반찬 두루 담아 비벼먹는 이 맛도 있을 것이다. 음식은 그렇다 치고 도시는 어떤가? 섞는 게 좋은가, 떼어 놓는 게 좋은가?

도시계획의 핵심은 도시의 땅덩어리를 몇 개의 지역(zone)으로 구분해주는 일이다. 개발제한구역, 수자원보호구역 같은 '용도구역'도 있고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 같은 '용도지역도'도 있다. 고도지구, 미관지구, 경관지구, 방화지구 같은 '용도지구'를 정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도시 내 토지를 용도구역, 용도지역, 용도지구로 구분해주는 일을 조닝(zoning)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용도지역제' 또는 '용도지역지구제', '지역지구제' 등으로 부른다. 용도란 말이 들어갔으니 각 존마다 허용되는 용도가 당연히 다르고, 용도뿐만 아니라 허용하는 밀도(건폐율, 용적률)와 건물의 높이를 제한하기도 한다. 조닝의 핵심은 분리하는 것이다. 섞이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다.

조닝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800년대 말 독일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미국에서는 1916년 뉴욕시의 조닝을 그 기원으로 본다. 조닝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분명하다. 주택과 공장이 가까이 있을 경우 우려되는 주거환경 침해를 막을 필요가 있고, 자본주의 도시에서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존중해야 함이 마땅하겠지만 재산권 행사로 인해 혹여 다수 시민의 안전과 복리를 침해당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닝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조닝을 둘러싼 행정기관과 토지주 간의 갈등도 첨예했다. 결국 소송으로 비화되어 법원의 판결로 조닝의 합법성을 인정받은 뒤에야 조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도시들도 이와 같은 조닝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다. 도시의 모든 땅은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주거지역은 다시 전용주거지역(1종, 2종), 일반주거지역(1종, 2종, 3종), 준주거지역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상업지역은 중심상업, 일반상업, 근린상업, 유통상업지역으로 나뉘고 공업지역은 전용공업, 일반공업, 준공업지역으로 나뉜다. 녹지지역 역시 보전녹지, 생산녹지, 자연녹지로 구분된다. 용도지역과 달리 용도구역이나 용도지구는 필요한 곳에 선별적으로 지정된다. 우리 집이나 내 땅이 어떤 용도지역으로 지정되었는지는 도시계획확인원을 떼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의 도시계획제도는 이렇게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따로국밥이 기본 메뉴인 식당에 비유할 수 있다. 문제는 '분리'하는 것이 꼭 좋은가에 있다. 주거지역에 공업이나 상업용도가 섞여있으면 안될까? 소음을 내고 매연을 내뿜는 공장이 주택가에 있다면 문제겠지만, 피해를 주지 않는 자그마한 가내수공업 공장들이 주택가에 섞여 있으면 안 될까?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다세대주택들 또는 아파트단지 여기저기에 상점들이 골고루 섞여 있으면 큰일이 날까?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분리조치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 마을 뒤에 최근 건설된 아파트단지에 사는 지인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적이 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차를 두고 걸어서 갔다. 조금 늦은 저녁 시간이었는데 단지입구를 지나 산자락 아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지인의 댁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주차장은 모두 지하에 두고 지상은 녹지나 보행공간으로 만들었는데, 길을 걷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차를 이용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단지입구에서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여 집 근처에 주차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오게 되니 지상은 이른 저녁부터 발길이 끊겨 한적할 수밖에.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곳은 어두워 섬찟한 느낌마저 들었다.

옛날 동네들은 이렇지 않았다. 집과 가게들이 늘 가까이 붙어있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의 1층은 대부분 가게여서 밤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가게 덕에 집에 오는 길이 한적하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차가 오가는 길가에는 사람들 발길도 이어져 밤늦도록 거리는 환했다. 그렇게 주택과 가게들이, 집과 작은 공장들이 섞여 살던 도시가 따로국밥으로 변했다. 교외 주거지를 개발하고 중산층들이 도시 밖으로 빠져나간 뒤 도심공동화 현상이 벌어졌다. 주택들만 모여 있는 교외주거지도 밤엔 인적이 드물어졌다.

따로국밥 같은 도시를 섞어찌개 같은 도시로 바꿀 수는 없을까? 방법은 있다. 아파트를 짓더라도 상가건물을 별도 건물로 짓는 대신 길을 따라 늘어서게 하면 어떨까? 지금도 구반포나 이촌동에 가면 아파트단지 상가들이 길가에 늘어선 풍경을 볼 수 있다. 길가 상점들은 거리를 지켜주고 밝게 해준다. 여의도나 테헤란로처럼 오피스가 밀집된 업무지구에도 밤늦도록 거리를 오가게 할 수는 없을까? 퇴근시간 이후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쓸쓸한 업무지구를 사람들로 북적대는 활기찬 밤거리로 바꿀 수는 없을까? 잘 생각해보면 답이 있을 것 같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생명체 도시의 핏줄 같은 거리거리에 쉼 없이 막힘없이 피가 돌게 하는 묘안이 있지 않겠는가?

<이글은 서울시 '내손안의 서울'에서 발췌된 글입니다.>

전국아파트신문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jkapt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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