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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칼럼] 거리도 살고, 가게도 살려면?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거리와 가게를 함께 살린 노량진 컵밥거리와 연세로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부교수

도시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가운데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들이 있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풀려고 달려들다 보면 더욱 꼬이고 악순환에 빠져버리는 문제들이 있다. '노점' 문제도 그렇다.

노점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나뉜다. 하나는 불법적인 것이니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도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고,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하고 있으니 마땅히 단속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노점상 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불상사가 벌어지곤 한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노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시각은 노점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저소득층의 생계수단이고 자구적 실업대책이니 노점의 존재를 인정해주거나 묵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점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에서 예나 지금이나 노점이 존재하고 있고 노점에 대한 도시나 국가의 정책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서울시의 노점 정책도 변화를 거듭해왔다. 2013년 말 서울시는 '거리가게 상생정책자문단'을 출범시켰다. 노점을 부르는 명칭도 예쁜 우리말 ‘거리가게’로 바뀌었다. 상생정책자문단에는 전노련(전국노점상총연합)과 민노련(민주노점상전국연합) 등 노점단체 대표를 비롯해 상인단체 대표, 소비자단체 대표, 갈등해결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의 노점 정책은 말 그대로 '상생'을 지향한다. 거리도 살고 가게(노점)도 살리는 상생협력방안을 찾고 있다. 서울시와 노점단체가 함께, 또 시민사회와 전문계가 함께 논의의 장을 만들고 신뢰를 쌓아가며 상생의 지혜를 찾고 있다. 상생의 원칙과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다. 노점이 갖는 부정적 영향은 줄이고, 노점의 긍정적 측면들은 살리는 것이다.

노점이 거리에 주는 부정적 영향의 하나는 보행환경 침해다. 보도를 점유하고 있고, 특히 통행이 빈번한 교차로나 횡단보도 주변,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 출입구 같은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보행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점의 크기와 위치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이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 노점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가스의 안전문제, 식품위생 문제 등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조치들도 필요하다.

노점은 거리와 도시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의 유명도시들의 거리에는 대개 노점들이 있다. 거리에 활력을 주고, 길을 걷다가 손쉽게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음료, 식품을 구매할 수 있으니 편리하기도 하다. 노점이 밤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으면 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지킴이 역할도 맡아 하게 된다.

노량진 컵밥거리./동작구청

노점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을 덜어주면서, 안전과 위생 등 노점에 대한 부정적인 우려도 줄여가면서, 노점이 갖는 긍정적 측면을 살려나가는 일, 말 그대로 거리와 가게가 함께 사는 상생의 지혜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조금씩 가시적 성과들과 결실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량진 컵밥거리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변신한 연세로가 좋은 예다.

입시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원가가 밀집해 있는 노량진역 앞 노량진로에는 컵밥을 파는 거리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서울시와 동작구는 2015년에 이곳을 거리가게 특화거리로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워 실행하였고, 2015년 10월 노량진 컵밥거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에게 선을 보였다.

노량진역 앞에 있던 32개의 노점이 동쪽으로 옮겨졌고, 노점의 매대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산뜻하게 정비되었다. 개당 1000만 원 정도의 매대 비용은 노점상들이 부담했고, 동작구청에서는 수도와 전기시설을 비롯해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을 설치하고, 노점 사이사이에 앉아서 컵밥을 먹을 수 있도록 휴게공간도 조성하였다. 새롭게 조성된 컵밥거리는 거리와 가게를 함께 살린 좋은 사례로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이용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늘어 인근 상가의 공실률이 줄고 임대료도 올랐다고 한다.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신촌로터리까지 이어주는 연세로는 2014년 1월에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변신하였다.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넓혔고, 좁아진 차도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만 다닐 수 있는 트랜짓몰(transit mall)로 바뀌었다. 서대문구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공사를 하면서 거리가게의 정비도 함께 묶어 시행하였다.

도로를 바꾸고 교통체계를 혁신하는 일 자체도 많은 갈등을 빚는다. 변화에 따른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노점을 정비하는 일은 더욱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서대문구는 구청장이 직접 나서서 노점상을 설득하고 지역주민과 상인, 노점과 구청이 함께 참여하는 상생협의회를 구성하여 갈등해결과 상행의 합의안을 도출하였다.

넓어진 보도 위에 새롭게 디자인된 거리가게 27개가 자리를 잡았다. 노점 매대의 디자인과 제작비용은 서대문구청에서 부담했고, 노점상들은 매대 사용비(대부료)와 도로점용료로 연간 150만 원 정도를 구청에 납부하고 거리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구청에서는 거리가게의 매출을 올리기 위한 컨설팅을 비롯해 많은 지원을 해준다. 자문을 받아 호떡집에서 타코야끼로 업종을 바꾼 굴다리 앞 거리가게의 매출은 크게 올랐다고 한다.

노량진 컵밥거리와 신촌 연세로는 거리가게 상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보행환경을 침해하지 않도록 노점의 위치와 크기를 제한하고, 행정기관에서는 단속대신 물심양면의 지원으로 거리가게를 돕는다. 노량진 컵밥거리의 경우처럼 노점과 거리가 명소로 알려지면서 유동인구가 늘어 인근 상가의 매출도 함께 오른다면 말 그대로 거리도 살고 거리가게(노점)도 살고 상가가게(상점)도 함께 사는 더 큰 상생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뢰다. 행정기관이 노점을 단속과 정비의 대상이 아닌 상생의 동반자로 대하고, 노점 또한 함께 정한 약속과 규정을 준수하면서 거리의 활력을 높이는 매력요소로서의 제몫을 당당히 해나간다면 거리도, 가게도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일요일 주일미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면 낯익은 얼굴을 만난다. 나와 동갑내기 동네친구의 어머니다. 집 앞 텃밭에서 손수 기른 야채들을 보자기 위에 놓고 팔고 계신다. 여든이 훨씬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새색시처럼 고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지요? 상추랑 깻잎 좀 주세요.”

친구 어머니의 보자기도 말하자면 거리가게인 셈이다. 성당 문 앞 길가에서 만나는 따뜻한 미소를 불법이라 여기고 매몰차게 내쫓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거리가게도, 골목상권도, 도시의 모든 약자들도,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정글이 아닌.

<이 글은 서울시 '내 손안의 서울'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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