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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선칼럼] 창덕궁 길라잡이와 너구리 가족정환선 창덕궁 문화해설사
정환선 창덕궁 문화해설사

궁에서 길라잡이로서 관람객들에게 해설에 집중하다 보면 사진을 찍거나 전각의 아름다움이나 후원의 정취를 느낄 여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전각과 후원을 안내하다 보면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새들, 곤충들, 동물들과 마주치는데 그 중 “오동통한 내 너구리” 가족은 야행성이지만 백주 대낮에도 가끔씩 나타나서 어슬렁거리며 나와 관람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여 궁을 찾는 관람객들에게는 호기심과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이 녀석의 용모대장을 확인해보면 주둥이는 까맣고 끝이 뾰족하다. 개과로 몸의 털은 황갈색, 네 다리는 흑갈색, 발은 짧고 능청스럽고 큰소리가 나면 놀라 죽은 척하기도 한다.
창덕궁의 생태 축은 주산인 응봉자락을 타고 내려온 생기가 후원을 지나 종묘와 청계천에 이르는 길목을 따라 이어지니, 이 녀석도 혼자 또는 온 가족을 대동하고 이쪽저쪽 전각 주위와 후원 그리고 멀리는 청계천까지 그 길을 따라 넘나드는 것 같다.

세월 흐름의 변화는 조선왕실 가족들이 더 이상 살지 않는 넓고 커다란 궁궐이 되었고 이제는 왕실 가족들이 더 이상 살지 않는 이곳을 차지하고 왕 노릇을 하며 관람객을 점잖게 맞이한다. 이들은 선원전 뒤, 대조전 옆 수라간과 경훈각 주위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것 같으며 기분 좋은날이면 낙선재로 가는 길목을 떡하니 버티고 둘러앉아 사람들을 노려보기도 한다.

6월 말의 더운 여름날, 후원 애련지에서 관람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뽕나무가 오디를 길바닥 위로 떨어뜨려 새까맣게 장식된 길옆 창경궁 담벼락에 몸을 의지하며 두 눈을 치켜뜨고 관람객을 요리조리 살피며 구경하는 너구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는지 해설을 하는 중에 관람객들이 갑자기 술렁이며 카메라 셔터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너구리 특유의 웅크린 자세로 자기가 마치 스타 모델이 된 것처럼 도망가지 않고 포즈를 취한다.

궁은 사방이 커다란 담벼락으로 이어져 살아있는 생물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외부로부터 폐쇄된 공간이지만 중종반정 당시 지엄한 임금이었던 광해군은 반정세력이 창덕궁으로 밀려오자 얼마나 경황이 없었던지 호위 내시의 등에 업혀 궁궐 북쪽 담을 넘어 탈출했다. 만약 너구리였다면 담 밑 구멍으로 탈출하여 역사의 한 장면이 바뀌지 않았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창덕궁 후원은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들 70여종이 자라고 있고, 비교적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정원으로 서울시의 허파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새들과 곤충들 같은 작은 짐승들이 자연 속에서 후손들을 생산하고 키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늑함이 느껴지는 자연의 공간이지만 많은 관람객들로 인하여 동식물들의 생활터전이 위협 받고 있어 관람객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제한관람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몇 년 전에 신문과 방송 매체에도 보도되었듯이 멧돼지가 출몰하여 죽어나가기도 한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매우 안전하고 작은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거닐 수 있으며 새들 중 딱다구리가 편안하게 보금자리를 펼치고 살아가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후세에 물려줄 아주 귀중한 문화재를 혹여 너구리 가족이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궁궐의 명물로 자리 잡아 모두가 함께 잘 어울리는 관람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 더위가 한풀 꺾이고 궁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가을에 터줏대감 황제너구리가족과 궁궐길라잡이가 같이 있는 이곳으로 전각과 후원의 아름다운 정취와 문화재의 향기를 만끽하러 많은 분들이 어울러 함께 관람오시기를 기대하며 밝고 아름다운 덕이 넘치는 해설에 대한 설렘을 안고 기다려 본다.

전국아파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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