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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지나 유럽으로

에르지예스 화산의 축복

파샤바흐•괴레메

최고의 풍경은 늘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나는 법이다. 내게 셋 호텔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들렀던 그곳에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파샤바흐에는 거대한 버섯바위들이 있다. 누구는 이 바위들이 스머프 집을 닮았다고 하고, 또 누구는 다른 뭔가를 닮았다고 한다. 사실 보기에 따라서 스머프 집을 닮기도 했고, 또 다른 뭔가를 닮기도 했다. 한데 나는 이 바위의 생김보다는 이들 바위가 모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땅이 내려앉았다고 해도, 바람이 수십만 년 동안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불었다고 해도,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역시 답은 하나다. 자연은 위대하다는 것.

300만 년 전 발생한 에르지예스 산의 화산폭발로 카파도키아는 시작됐다. 그 때 쌓여 굳은 화산재가 오랜 세월 바람에 쓸리고 빗물에 깎이면서 지금의 기묘한 바위들을 탄생시켰으니 말이다. 아나톨리아 고원에 위치한 카파도키아는 실크로드의 주요 교역로 중 하나였다. 동서양을 잇는 비단길, 실크로드를 차지하려는 전쟁은 수세기에 걸쳐 카파도키아를 그 중심에 있게 했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 땅의 주인도 바뀌었다. 페르시아 제국에서 비잔틴 제국으로, 또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사람들이 험한 바위계곡의 벽을 뚫고 거친 땅을 파낸 건 어쩌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의 참화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날카로운 칼만으로도 쉽게 구멍이 뚫리는 응회암 덩어리들은 그렇게 피난처가 되었고, 또 집이 되었다. 이들 석굴은 초기 기독교 시대 로마의 박해를 피해 모여든 신자들에 의해 교회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괴레메 계곡에는 아직도 당시 만들어진 석굴 교회가 여럿 남아 있다.

해가 많이 기울었다. 하늘도 제법 붉어졌다. 레드 밸리를 더욱 붉게 물들이는 저녁 빛이 참 곱다. 카파도키아의 숨은 명소, 레드 밸리는 카파도키아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일몰 무렵에는 붉은 절벽에 노을빛이 더해져 그야말로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에페소스에는 두 개의 원형경기장이 있다. 마치 도시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듯, 둘은 크리테스 거리 양 끝에 자리해 있는데, 에페소스 입구 쪽에 위치한 것이 소극장이고 셀수스 도서관 지나 만나는 것이 대극장이다. 둘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규모에서는 2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지붕이 있었던 소극장에선 시낭송이나 음악회가 열렸던 반면 대극장에서는 이보다 규모가 있는 연극이나 문화행사, 그리고 가끔은 검투사들의 목숨 건 결투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에페소스에 남아 있는 유적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아치형 입구에 조각돼 있는 메두사의 모습이 인상적인 이곳은 118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4세기 때 지진과 화산으로 파괴된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이후 몇 번의 보수를 거쳐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신전은 모조품이며, 본래의 건물은 셀축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스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135년 로마의 총독이었던 셀수스를 기념해 지은 이곳에선 코린트 양식의 화려한 정문 석주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4개의 정문 입구에는 각각 예지, 덕성, 사려, 학술을 상징하는 여인상을 세워 웅장함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이곳 셀수스 도서관에는 당시 1만2천여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헬레니즘을 거닐다

에페소스

헬레니즘 문화와 로마 문화를 대표하는 많은 건축물이 남아 있는 에페소스Ephesos는 터키의 해안도시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이오니아 지방에 있는 고대도시 유적이다. 그리스의 식민지로 시작해 페르시아 제국에 복속됐다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으로 다시 그리스의 품으로 돌아온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스탄불의 두 거인

아야 소피아•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신성한 지혜의 교회로 불리는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Hagia Sophia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성당이다. 532년~537년 사이 세워진 이곳은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이 완공되는 1520년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아야 소피아는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로 찬사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12개의 돔으로 둘러싸인 중앙 돔을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은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 육중한 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스 물리학자와 수학자를 고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야 소피아의 중앙 돔은 예수를, 그리고 그 주위의 12개 작은 돔은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아야 소피아는 콘스탄티노플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 용도와 이름도 바뀌었다. 최초에는 카톨릭 의식을 위해 지어진 성당이었지만, 1453년 이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이름도 성소피아 성당에서 성소피아 모스크로 바뀌었다. 1931년까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현재 카톨릭의 성당도, 이슬람교의 모스크도 아닌 성소피아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야 소피아에는 비잔틴 미술의 꽃이라 불리는 모자이크가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에게 콘스탄티노플과 아야 소피아를 바치는 두 황제의 모습을 표현한 모자이크가 인상적인데, 이들 모자이크는 아야 소피아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될 당시에는 두꺼운 회벽으로 덮혀 있었다고 한다. 카톨릭과 이슬람교가 공유했던 아야 소피아에는 다양한 모자이크와 함께 ‘알라신만이 유일한 신이다’라는 내용의 코란 글귀도 곳곳에 남아 있다.

 

따로 또 같이

이집시안 바자르•그랜드 바자르

17세기에 지어진 이집시안 바자르는 이집트에서 건너온 상인들이 향신료를 팔던 곳이라고 한다. ‘이집시안’ 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집시안 바자르는 터키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그랜드 바자르와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공간이란 점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외지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보니 화장기 없는 민낯처럼, 꾸밈없는 터키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어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집시안 바자르보다 200년 먼저 지어진 그랜드 바자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자르로 알려져 있다. 아치형으로 이뤄진 그랜드 바자르에는 5,000개가 넘는 상점이 입점해 있으며, 열십자 모양으로 시장을 관통하는 두 개의 주 통로와 이어진 출입구도 20곳이나 된다. 

아야 소피아와 마주보고 있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인 아흐메드 1세가 지은 터키의 대표 이슬람 사원이다. 모스크 내부의 푸른색 타일에 의해 블루모스크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6개의 거대한 미나레트와 겹겹이 쌓아올린 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맞은편의 아야 소피아 보다도 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야 소피아가 여성적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에서는 남성적인 강직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그건 카톨릭의 성당으로 지어진, 자신의 그것보다 천 년이나 앞서 세워진 아야 소피아에 대한 견제, 혹은 자격지심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흐메드 1세는 이곳 모스크를 세우면서 아야 소피아보다 크고 화려한 사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2013 이스탄불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린 아야 소피아 광장은 47일에 걸쳐 1만5천여 km를 달려온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의 최종 종착지였다. 경상북도 경주를 출발해 중국, 키르키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그리고 터키까지 8개국을 숨 가쁘게 달려온 코리아 실크로드의 끝.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정철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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