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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유랑하는 노마드 키르키스스탄

하늘길을 달려 만난 초원, 토르갓 패스

강원도 정선에 가면 만항재라는 고개가 있다. 정선과 태백을 잇는 이 고갯길은 우리나라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로 알려져 있다. 10여 년 전 만항재를 처음 찾았을 때, 이렇게 높은 곳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었다. 한데 중국과 키르키스스탄을 잇는 국경길, 토르갓 패스Torgart Pass는 그 높이가 무려 3천750m다.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의 2배, 백두산보다도 1천m가 높다. 중국세관을 지나면서, 탐험일정을 정리한 수첩을 뒤적여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 쳐놓은 문장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본다. ‘체질에 따라 고산병 증세를 느낄 수도 있음.’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었다. 여행기를 쓰다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이라는 표현을 습관처럼 쓰게 되는데, 정말이지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두고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말 외에 그 어떤 표현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산이며 들이며 심지어 하늘까지 순한 파스텔 톤으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마음을 끌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그 황량한 산을 보며 따뜻하다 느꼈던 건, 장담컨대 자연이 선사한 그 깊고 풍부한 색감 때문이었으리라. 이곳의 집들을 보면 보호색을 띤 것처럼 풍경 속에 가만히 녹아 있는 느낌이 든다. 소담한 집들은 대부분 흙을 이용해 지었는데, 흙벽돌을 쌓거나 외벽에 흙을 바르는 것처럼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특이한 건 유목생활을 상징하는 유르트Yurt까지 흙으로 지었다는 사실이었다. 유르트는 쉽게 지었다 쉽게 허물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굳이 흙으로 지었을까.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태어나고 죽는 것처럼 확실한 건 없으니까. 토르갓 패스를 지나면서 많은 무덤을 봤다. 버려지듯 벌판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무덤도 있었고, 가족묘처럼 대여섯 기가 한 데 모여 있는 것도 있었다. 형태도 참 다양했다. 봉분이랄 것도 없이 돌 몇 개 얹어 놓은 것이 있는가 하면, 이슬람 사원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제법 그럴싸한 모습을 한 것도 있었다. 죽음에 격이 있을 리 없고, 슬프지 않은 죽음이 없을 텐데, 무덤의 규모에 따라 죽은 자의 삶이 평가되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진실은 아닐 텐데 말이다. 5호차에 이상이 감지된 건 토르갓 패스에 접어들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운전을 하던 정성진 대원이 액셀을 밟아도 차가 잘 나가지 않는다며 차를 세웠다. 브레이크가 과열됐는지 금속 타는 냄새도 났다. 차량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한데 지금으로는 잠깐 쉬어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걱정이다. 운행이 계속될수록 차량에 무리가 더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2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날 때는 전 차량에 경고등이 들어오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급기야 앞서가던 2호차에서도 5호차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중국 국경을 500m 정도 남겨놓고 일이 터졌다. 힘겹게 고개를 오르던 2호차가 멈춰서 버린 것이다. 한번 멈춘 차량은 시동도 걸리지 않았다. 중국 국경까지는 밀어서 옮긴다지만 키르키스스탄 국경까지는 또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저녁 7시, 국경이 폐쇄되기 전까지 키르키스스탄에 도착해야 한다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명제였으니까. 2호차와 이를 견인할 5호차를 남겨둔 채 국경으로 향한다. 그들이 무사히 합류기를 바라면서. 

키르키스스탄은 전 국토의 90% 이상이 산악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평균 해발고도도 2천700m를 넘는다. 키르키스스탄 국경을 지나 1시간 이상을 달렸지만 여전히 고도계는 3천m 이상을 가리킨다. 웬만한 높이로 떠 있는 구름이라면 저만치 발아래 놓일 높이다. 그랬다. 우리는 지금, 하늘 위를 달리고 있다.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황량했던 산과 낙타풀만 가득했던 메마른 땅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 온통 초록빛으로 변했다. 국경 하나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어놓은 인위적인 선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어찌 이리 다른 모습의 풍경이 펼쳐지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곳은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키르키스스탄이다.타쉬라밧 초원 해발 3천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해 있다. 정확히는 3천100m. 현지인들에게야 평지와 다름없는 곳이겠지만 몇몇 예민한 대원들은 벌써부터 고산병 증상을 호소한다. 나 역시 머리가 묵직한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에서 오는 기 나쁜 두통처럼. 

험준한 협곡을 비집고 들어올 때만 해도 ‘이런 곳에 평지가?’ 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타쉬라밧 초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타쉬라밧 초원은 중국과 키르키스스탄을 오가던 대상들의 쉼터였다고 한다. 물이 있고 평지가 있으니 먼 길 오가는 대상들에게 이보다 좋은 쉼터는 없었으리라. 오늘은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유르트에서 하밤 묵을 예정이다. 유르트는 유목민들이 생활했던 이동식 천막을 가리키는 말로, 몽골에서는 게르라고도 부른다. 원통형 천막에 둥근 지붕을 올린 유르트는 마치 거대한 냄비를 닮았다. 

탐험대의 막내 김정현 대원의 모습이 몇 시간째 보이지 않았다. 타쉬라밧 초원에 도착한 뒤 개울 너머 산을 오르는 모습이 목격되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를 1시간.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서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은 이곳에 아직 늑대가 있다는 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현직 구급대원인 이영화 대원을 중심으로 급히 구조대를 꾸린 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또 1시간이 흘렀다. 피 말리는 그 시간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정현이를 발견했고, 별 이상 없다는 반가운 소식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랜턴 없이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힘겹게 산을 내려오는 정현이의 모습이 보였던 건 다시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많이 지쳐 있었지만, 건강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정현이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비로 마음이 진정됐다.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정현이에게 나는 어깨만 가볍게 토닥여 줄 뿐 마음속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고맙다, 정현아’. 

타쉬라밧 초원에서 카라반 사라이Karavan sarai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카라반 사라이는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다. 요즘에야 호텔이나 모텔 등 다양한 숙소가 있지만 당시에는 카라반 사라이만이 대상들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잠자리였다. 아직도 이란 등 몇몇 나라에는 숙소로 활용되는 카라반 사라이가 남아 있다는데, 이곳의 카라반 사라이는 더 이상 숙소로 활용되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내 기억 속 그 곳… 도르도이 바자르

많이 닮았다. 분위기도, 파는 물건들도 많이 닮았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 있던 그 시장하고 말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 시장이 하나 있었다. 규모며 시설이며 여느 동네에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시장이었다. 그곳에는 구름처럼 푹신해 보이는 이불이 가득 쌓여 있던 이불가게가 있었고, 냄새만으로도 여기가 어딘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던 신발가게가 있었다. 비릿한 냄새가 싫어 늘 저만치 돌아가야 했던 생선가게도, 먹음직스러운 고기 덩어리가 발걸음을 놓아주지 않던 정육점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통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순대집, 김밥집, 족발집은 어린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 시장 후미진 곳에 있던, 내가 너무도 싫어했던 닭집도 빼놓을 수 없지 싶다. 좁은 철창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던 닭들과 털털거리며 돌아가던 닭털 뽑는 기계는 어린 내겐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별스러울 것 없는 그곳에 대한 기억이 어찌 이리도 또렷이 남아 있는 걸까. 늘 그곳에 있 던 것이기에 단 한 번도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건 아마도 그곳이 익숙한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내게 시장은 그런 곳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공간 말이다.

 

길 위의 숙명, 투아슈 패스

해발 3천586m에 이르는 투아슈 패스는 토르갓 패스 못지않게 험난한 고갯길이다. 길은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졌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비까지 내렸다. 한 고비 지났다 싶으면 바로 급커브 구간이 나타났고, 길은 그만큼 더 가팔라졌다. 구절양장처럼 이어진 길은 그렇게 투아슈 패스 정상까지 우리를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투아슈 패스 정상 부근에서 한 무리의 소떼를 만났다. 소들은 두 명의 젊은 소몰이꾼의 손짓에 따라 도로 난간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차로 오르기도 쉽지 않은 길을 소떼를 몰고 오르다니. 초라한 그들의 행색에서 지나온 길의 고단함을 읽을 수 있었다. 힘들고 지쳐 피곤할 법도 한데,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들의 눈동자는 흡사 고행승의 그것처럼 맑고 순수했다. 이들 젊은 목동의 모습을 보면서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의 모습을 떠올린 건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

다. 목적은 다르지만 길 위의 삶을 숙명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그들은 2천년 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딱 맞았다. 투아슈 패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고된 고갯길을 오르며 들인 발품에 대한 보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껏 거대하고 웅장한 산악지대에 감동했지만, 이곳에서는 광활한 초원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국토의 90%가 산악지역이라는 키르키스스탄에서 이렇게 넓은 초원을 만나게 될 줄이야. 잔뜩 낀 구름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린 몇 줄기 햇살이 초록빛 초원을 더욱 푸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초원의 아침은 평화롭다. 미친 듯이 쏟아붓던 빗줄기도, 하늘을 찢을 기세로 울어대던 천둥소리도 이제는 없다. 다만 간간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말몰이에 나선 사내아이의 긴 휘파람 소리만이 낮은 대지 위를 안개처럼 가만히 떠돌 뿐이다. 

정철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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