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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유랑하는 노마드 3키르키스스탄 · 카자흐스탄 · 우즈베키스탄

동방의 푸른 진주

아프라시압 박물관

아프라시압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벽화에는 고구려인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 쓴 조우관과 복식 등이 한국 고분벽화에 남아 있는 그것과 일치한다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정말 그들이 고구려인이라면 그들은 왜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들은 뭘 얻고 싶었을까.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우호협력기념비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저 우호협력기념비는 아마도 그 때, 저들이 목숨을 걸고 이곳을 찾아왔을 때, 그 때 세워졌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실크로드의 중심, 부하라

이스마일 사마니 묘•차쉬마 아윱•아르크 성•칼란 미나레트•가르가론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 묘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이다. 9세기에 건립된 이곳은 이슬람 초기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중앙아시아 건축물의 기념비적인 존재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상감기법을 적용해 쌓은 벽돌의 문양은 햇빛의 강도와 각도에 따라 그 색이 달라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숨을 쉬지 않고 묘를 두 바퀴 돈 뒤 소원을 빌면 소원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오래 전, 아윱이라는 사람이 지팡이로 땅을 내리쳐 큰 우물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그 물을 지키기 위해 사원을 만들었고, 그곳을 차쉬마 아윱Chashma Ayub, 즉 ‘아윱의 샘’이라고 불렀다. 아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많은 이들이 그를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으로 믿고 있다. 타지크어로 윱은 아윱으로 발음이 된다고 한다. 사실 그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 그곳에선 여전히 물이 솟고 있으니까. 주민들의 타들어가는 갈증을 풀어줄 생명과도 같은 물이. 물은 4개의 수도꼭지 중 한 곳에서만 나왔고, 나오는 물의 양도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을주민들은 여전히 이곳으로 물을 받으러 왔다. 수도꼭지가 달려 있는 큼직한 양철통 위에는 밥공기 크기의 그릇 세 개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해 둔 것 같았다. 물을 받으러 온 청년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방인의 눈치를 잠깐 살핀 뒤 준비해 온 페트병을 수도꼭지로 가져갔다. 한 방울, 한 방울 정성껏 물을 받던 그가 잠시 주춤하더니 양철통 위 접시에 물을 가득 담아 건넸다. 아마도 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 그 곳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릇 가득 담아 건네준 한 잔의 물. 그 속에는 수줍게 웃고 있는 그 미소만큼이나 선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르크는 타지크어로 ‘궁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아르크 성은 성의 이름이 아니라 아르크와 성이 합쳐진 말이다. 부하라의 역사와 함께 하는 아르크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정복자들에게 유린을 당했다. 하지만 허물어질 때마다 다시 세워졌다. 16세기경에 다시 지어진 지금의 아르크에서는 부하라 왕국의 마지막 아미르인 사이드 미르 알림이 소련 군대에 의해 아프카니스탄으로 쫓겨가기 전까지 살았다고 한다. 부하라는 톈산산맥을 중심으로 남도와 북도로 나뉘어 있는 실크로드가 하나로 몸을 섞는 곳으로, 1만여 km에 이르는 동서양 교역의 대동맥, 실크로드의 중간지점이다. 그곳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칼란 미나레트다. 등대의 역할을 겸했던 높이 47m의 이 거대한 첨탑에서는 매일 다섯 번씩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진다. 아잔의 울림이 무슬림들에게 안식을 제공한다면, 이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은 실크로드를 오갔던 대상들에게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칼란 미나레트는 13세기 부하라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칭기즈칸의 침략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칭기즈칸은 왜 이 첨탑만은 남겨놓았을까. 그는 이 거대한 첨탑 앞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첨탑을 ‘올려보다’ 떨어뜨린 투구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 그 행동에서 미나레트의 영험함을 느꼈던 걸까. 칼란 성원의 부속건물인 칼란 미나레트 좌우에는 이슬람 사원인 칼란 마스지드와 신학교인 미르 아랍 마드라사가 자리해 있다. 칼란 마스지드는 중앙아시아 최대 이슬람 사원으로, 1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다.

칼란 사원에서 가르가론 바자르까지는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도로 옆으로 아담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에는 일상 잡화에서 부하라의 특산품인 칼, 가위, 그리고 카펫 등 다양한 물건이 진열돼 있다. 가르가론 바자르는 철을 이용한 세공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칼과 가위는 물론 주둥이가 긴 이슬람식 주전자와 화병, 그리고 쟁반 등 모든 제품이 철로 만들어져 있다. 특히 해마를 닮은 듯도 하고 학을 닮은 듯도 한 가위는 그 모습이 기괴해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모양뿐 아니다. 칼, 가위, 쟁반 할 것 없이 모든 제품의 표면에는 다양한 문양과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손으로 새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곳 제품들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제작되는데, 모루 위에서 가위며, 칼이며, 쟁반이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고귀한 메르브

메르브 성•술탄 산자르 묘•투르크메니스탄 박물관

메르브 유적지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키즈 카라 왕궁이었다. 6세기경에 지어진 이 건물은 15m 높이의 외벽을 주름지게 만든 게 특이한데, 외벽을 주름진 굴곡으로 만들면 복사열을 막아줄 뿐 아니라 공정에 사용되는 벽돌의 수도 크게 줄일 수 있어 그리 했다고 한다. 한 때 수만 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 8개나 있었고 당대 최고 수준의 천문대가 있었던, 그래서 이슬람 세계에서 ‘고귀한 메르브’로 불릴 정도로 문화적으로 강성했던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키즈 카라 왕궁은 ‘처녀의 성’이라고도 불린다. 몽고군의 침입 당시 40명의 후궁이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성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을 두고 붙여진 애칭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진도에 있는 ‘삼별초 궁녀 둠벙’은 삼별초 항쟁 당시, 진도까지 추격해 온 몽고군의 거센 공격을 피해 삼별초 궁녀들이 스스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연못이다. 우황천이라 불렸던 이곳은 이후 삼별초 궁녀 둠벙이라 불리게 됐다는데, 만길재 아래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키즈 카라에서 차로 조금 들어가면 거대한 성문 터가 나온다. 20~30m는 족히 돼 보이는 이 성문 터를 중심으로 성벽이 길게 펼쳐진다. 성벽의 모습은 마치 작은 산과 산이 능선으로 연결된 듯한 모습이다. 메르브는 시대별로 그 성터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떠도는 도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는데, 성터를 에워싼 성벽의 길이를 합치면 230km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타원형의 에르크 카라는 그 높이가 무려 1백10m에 이르며,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가 한 공간에서 종교적 갈등 없이 지낸 곳이라고 해서 종교의 메카로도 불렸던 곳이다. 에르크 카라 위에서는 저 멀리 술탄 산자르의 영묘를 포함한 메르브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술탄 산자르는 메르브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메르브 왕국의 왕이다. 가묘의 형태로 남아 있는 술탄 산자르 영묘는 몽골군의 침략과 숱한 지진 등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본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중심부와 변두리의 모습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물론 어느 나라에나 빈부의 격차는 있기 마련이다. 한데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건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고 썰렁한 도시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화려하고 깨끗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어색한 느낌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내를 지나는 1시간여 동안 거리에서 본 사람이라곤 경찰관 두 명을 포함해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호텔 앞을 지날 때도, 번듯한 버스 정류장 앞을 지날 때도,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없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곳은 처음부터 사람을 위해 지어진 도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촬영을 위해 지은 세트장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은 껍데기뿐인 도시일지 모른다는. ‘사랑의 거리’란 의미의 아슈하바트Ashgabat, 하지만 난 그곳을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거리가 아닌, 음산한 기운만이 감돌던 유령의 도시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투르크메니스탄 국립박물관이 위치한 니사Nisa는 고대 파르티아 왕국의 수도로 동서의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투르크메니스탄 국립박물관을 찾은 것도 이런 문화교류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박물관에는 불상에서 비너스 석상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많은 유적이 전시돼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시선을 끈건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각배였다. 각배는 신라의 유적에서도 발굴된 적이 있는 것으로, 이는 고대 파르티아 왕국과 신라가 교류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정철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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