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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고대왕국의 수도를 찾아서미얀마 라카인주 먀욱 여행기

“5명의 아라칸족 병사가 거대 버마왕조의 몰락을 가져왔다”

20세기 초반,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고 있던 미얀마의 보더퍼야 왕은 자신의 즉위를 자축하기 위해 높이만 무려 150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탑인 ‘밍군대탑’을 축조하기 시작한다. 당시 탑의 건설에는 각지에서 잡혀온 노예와 전쟁포로들이 동원되었는데, 혹독한 노역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전쟁포로 들이 국경을 넘어 인도로 도망을 가게 된다. 이에 보더퍼야 왕은 이들을 잡기위해 인도의 국경을 침공하는데, 이것이 당시 동방진출을 노리던 영국에게 빌미를 제공하게 되어 영국-미얀마전쟁(Anglo-Burmese Wars)이 발발하게 된다. 총 3차에 걸친 전쟁을 통해 미얀마는 결국 패배하여 63년간 영국의 식민 통치하게 들어가고, 버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 또한 긴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5명의 전쟁포로들, 그들은 모두 아라칸 왕국 출신의 포로들이었다. 아라칸 왕국은 미얀마의 고대 왕국중 하나로, 미얀마대륙의 동서를 가르는 아라칸 산맥의 서쪽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왕국이었다. 1784년 보도퍼야왕의 침공으로 멸망하기 전까지 미얀마 서부의 패권을 쥐고,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양식을 발전시켜온 독립국인 아라칸 왕국은 이미 오래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라칸 왕국의 고대 문화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한 폐쇄성 덕분에 그 독특함을 여전히 간직한 채 역사와 함께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먀욱(MRAUK U)

리틀 바간이라 불리는 잊혀진 고대 아라칸 왕국의 수도 먀욱은 수백기의 파고다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이국적인 미얀마에서 더 이국적이고 순수한 현지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칼라단강(Kaladan River)을 거슬러 오르는 6시간의 뱃길 끝에 만나게 되는 미지의 왕국.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아라칸 왕국의 수도였던 먀욱은 최근까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땅이었다. 잊혀진 고대왕국의 수도라는 묘한 동경심에 이끌려 유럽의 배낭여행객들이 하나둘 찾기 전까지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먀욱은 현재 유럽뿐만 아니라, 미얀마를 찾는 대다수의 외국 여행객들에게 묘한 환상을 심어주며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곳이다. 8만개의 불상이 있는 시타웅 파고다와 중세유럽의 성벽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구조의 두카뗑 사원, 울창한 정글 속 파고다군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는 디스커버리 힐은 먀욱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잊혀진 전설 속 고대왕국의 수도 먀욱을 갈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서부 라카인주의 주도인 시트웨(Sittwe)를 거치는 방법이 유일하다. 이는 외국인 여행제한구역과 여행허가구역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미얀마의 정치적인 특성 때문이다. 시트웨에서 먀욱을 갈 수 있는 방법은 일단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칼라단강(Kaladan River)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과 육로로 이동하는 방법. 먼저 육로로 이동하는 방법은 안타깝지만 외국인은 불가다. 이 지역 역시 외국인은 육로로 지날 수 가 없는 곳이다. 칼라단강을 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주 2회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정부보트(Goverment Boat)를 이용하는 방법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개인보트(Private Boat)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일정에 여유가 있고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고자 한다면 정부보트를 이용하길 권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혼자 또는 일행과의 고즈넉한 뱃길 여행을 하고 싶다면 개인보트 이용을 권한다. 2004년 야간에 칼라단강을 거슬러 오르던 프라이빗 보트가 전복하여 외국인 여행자 5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 촉박한 일정이라도 야간에 이동하는 것은 자칫 안전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주간이동을 권하는 바이다. 칼라단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6시간의 항해는 소박한 농촌마을의 소경과 강둑에 자리 잡고 있는 황금 파고다를 감상하기에 좋다. 도시에서 일을 보고 돌아가는 현지인들과의 교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로 다가온다.

 

고대 아라칸 왕국의 유적군 감상하기

먀욱은 작은 시골마을이다. 세계 3대 불교유적지이자 유네스코 지정문화재인 바간의 유적군처럼 광활한 면적에 수많은 파고다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 아니니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며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고대 아라칸 왕국의 독특한 파고다양식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 유적군을 감상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자전거와 마차 그리고 짚차를 렌트하는 방법이 있다. 대다수의 배낭 여행객들은 자전거를 이용한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2$에 렌트 가능하고 지도를 함께 준다. 짚차 렌트는 하루 20$, 호스카(마차)는 18$에 이용할 수 있다.

 

먀욱의 유적군은 크게 동,남,북의 방향에 산재해 있는데 버마족들의 파고다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먀욱의 모든 사원들이 대표사원들을 방문 시 함께 들릴 수 있는 위치라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 등에서 제공하는 지도만으로 충분히 혼자 관람이 가능하다. 유적군에 관심이 많다면 1일 40,000짯의 영어가이드와 함께 하는 것도 방법이다.

 

북(North) 유적군의 대표 파고다는 시따웅파고다(Shittaung Paya)이며 아울러 시따웅 파고다는 현재 먀욱을 대표하는 파고다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1636년 민바기왕에 의해 축조되어졌다. 파고다 내부에는 8만개의 불상과 부조가 모셔져있는데 시따웅은 미얀마어로 8만을 뜻한다. 북쪽사원군의 시따웅퍼야 서편에 위치해 있는 두까뗑퍼야(Htukkan Thein Paya)는 1571년 민팔라웅왕에 의해 축조되어졌으며 독특한 성벽구조를 가지고 있는 라카인왕국의 독특한 사원양식을 보여주는 곳이다. 안도우 파고다(Andaw Paya)는 1521년 민할라자왕에 의해 축조되어졌다. 육면체의 탑신이 상층부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형상이며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진 연꽃무늬를 볼 수 있다.

 

동(East)유적군에 자리 잡고 있는 사카야마나웅 파고다(Sakyamanaung Paya)는 1629년 띠리뚜 다마르자왕에 의해 축조되어진 파고다이다. 각층별 석실에는 부처의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특이하게 8면체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따웅사원(Koethaung Temple)은 1553년 민따이카 왕에 의해 건설되어졌다. 고따웅은 불상과 부처의 부조가 사원내부에 9만개가 설치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앙의 대탑을 기준으로 전면부에 수백기의 스투파가 정렬되어있다. 피지파고다(Pizi Paya)는 고따웅템플 서쪽편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언덕위의 파고다인데 폐허속에 독특한 형상의 불상 2기가 위아래로 자리 잡고 있다. 불상의 사실적인 눈 묘사는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남(South) 유적군에 자리하고 있는 반둘라모나스트리(Bandoola kyaung monastery)는 현재까지 많은 수의 승려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 사원은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황금언덕의 탑이라 불리우는 쉐타웅 파고다(Shwetaung Paya)는 1553년 민빈왕에 의해 축조되어졌다. 10분정도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먀욱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한 장의 사진

고대왕국의 수도 먀욱으로 필자를 이끈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미얀마 게이무당에 관한 르포작업을 위해 미얀마 최대의 도시 양곤에 머물고 있던 2010년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정글 속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파고다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의 풍경을 담은 먀욱의 디스커비리힐 전경 사진. 울창한 정글 속 파고다군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는 디스커버리 힐(Discovery Hill)은 먀욱 중심가 기준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언덕이다. 찾아가는 길은 시타웅파고다(Shittaung Paya)에서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Andaw 퍼야와 Ratanabon 퍼야를 지난 뒤 30M정도 이동하면 왼편에 둥근 나무간판으로 Discovery라고 써있는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중심가에서 자전거로 10분 도보로 30분이면 충분하다. 길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에게 디스커버리라고 말하면 모두 알고 있으나 디스커버리 힐의 포인트는 이른 아침 일출시간에 맞춰 서서히 밝아오는 정글속의 유적군을 보는데 있으니 방문 전날 미리 찾아가는 길을 알아두는 것 또한 방법이다. 입구에서 대략 15분 정도 완만하지도 그렇다고 급하지도 않은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차가운 아침공기를 가르며 정글 사이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일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상처로 남은 과거의 흔적 (Chin Village)

“아팠어, 너무 아팠어.”

“난 싫다고 말했어. 무서우니 제발 내게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사정을 하고 울었었지.”

“이제는 흐릿해져 버린 선들이지만 그날의 기억만은 생생해. 죽는날까지 잊을 수 없을거야.” 

먀욱에서 보트로 림루강(Lemro River)을 2시간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타투페이스(Tattoo face)로 유명한 친빌리지(Chin Village)에 도착하게 된다. 고대 군소왕국이 난립하던 시절 끊임없이 반복되는 외세의 침략에서 약소부족의 남자들이 그들의 아내와 딸을 지켜낼 수 있었던 마지막 방법은 부녀자들의 몸에 흉터를 남기거나 혐오스런 표식을 다는 방법뿐이었다. 친족의 남자들이 그들의 여자를 지켜냈던 방법은 얼굴에 거미줄 모양의 문신을 새겨 넣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현재에 와서는 납득하기 힘든 아픈 과거의 유물로만 기억될 뿐이다.

친족의 모든 여자들은 6세에서 8세 사이에 얼굴에 거미줄 모양의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마을에는 문신을 새기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었고 예외 없이 마을의 모든 여자들은 얼굴에 문신을 해야만 했다. 인터뷰를 하며 만난 다수의 할머님들은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현재 친빌리지의 문신을 얼굴에 새기고 있는 할머님들 중 가장 연세가 적은 분이 55세이니 얼굴에 문신을 새겨 넣던 이 풍습은 최소 55년 전까지는 이어졌다고 보면 될 듯하다.

버마족들과는 언어, 음식, 생활방식 등 모든 면에서 이질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아라칸족들은 그들이 고대 아라칸 왕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작은 시골마을 먀욱에서 고대왕국의 숨결을 가꾸고 그들만의 소박한 삶을 영위해오고 있다.

김재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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