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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미소 3색의 나라 미얀마(Myanmar)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라오스, 태국, 5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얀마는 개방된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영향 육로 입국은 허용되지 않고 항공을 통한 입국만이 허락된다. 이로 인해 꽤 오랜 기간 여행객들에게는 불편하고 낯선 나라로만 인식되어 왔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수많은 나라 중 가장 안전한 치안을 보유하고 있고 독특한 생활양식과 고대왕국의 유적지들이 전국에 퍼져있다는 입소문이 유럽의 여행객들을 상대로 알음알음 퍼지면서 떠오르는 관광지로 평가받게 되었다. 최근 2년 사이 국내에서도 많은 여행객들과 불교신자들이 찾는 여행지로 부각되면서 삼색의 나라 미얀마는 하나하나 베일을 벗고 있다. 인도차이나의 2번째 크기의 면적을 자랑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현재 외국인이 갈 수 없는 곳이 더 많다. 

동방의 정원이라 불리며 도시의 전체가 숲에 쌓여있는 양곤(Yangon), 미얀마 마지막 꽁바웅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의 도시 만달레이(Mandalay), 세계3대 불교유적으로 꼽히는 탑의 도시 바간(Bagan), 산정 호수와 함께 살아가는 소수민족을 만날 수 있는 인레(Inlay). 미얀마를 대표하는 위 4군데의 도시에서 충분히 그들의 순수하고 밝은 미소를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동방의 정원 양곤(Yangon)

도시의 절반이 숲과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동방의 정원’이라 불리는 미얀마 최대의 상업도시, 양곤은 2005년 갑작스레 수도를 네피도로 옮기기 전까지 미얀마의 수도였다. 영국 식민시절 계획적으로 건설된 이 도시는 잘 정리된 시가지와 도로는 동남아에서 봐오던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전쟁의 종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양곤은 더 이상의 전쟁을 원치 않는 국민들의 성품을 대변한다. 정치적인 영향으로 인해 최신 트렌드의 도입이 더디게 전개되다보니 질서와 무질서, 신식과 구식이 함께 어울려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북부 샨주의 소수민족에 관한 르포작업 중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필자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던 아이의 말을 잊을 수 없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한 아이. 

“왜 돈을 많이 벌고 싶냐”는 질문에 “돈을 많이 벌어 쉐다공 파고다를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시골의 아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쉐다공 파고다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2500년 전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성불하고 부처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가 자신에게 공양을 올린 2명의 미얀마 상인에게 자신의 머리카락 8가락을 주었고, 이 머리카락은 현재 이 쉐다공 파고다의 지하에 안치 되었다. 

부처 생존당시에 지어진 유일한 파고다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수많은 불교신자들의 성지순례 코스다. 탑의 상층부는 8,688개의 금판으로 덮여져 있고, 이곳에 사용되어진 금의 무게만 무려 6만Kg이다. 탑의 최상층부에는 73캐럿의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루비 사파이어 등의 각종 보석들로 치장이 되어있다. 이 모든 것들이 기증으로 이루어 졌다고 하니 미얀마인들의 깊은 불심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양곤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탑은 그들이 자존심이라 여길만한 웅장한 규모다. 

술레 파고다(Sule Pagoda)는 미얀마의 양곤의 중심부에 있는 불탑(파고다)이다. 도시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오늘날 미얀마의 정치, 이념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쉐다공 파고다 보다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현재의 쉐다공 파고다의 장소는 술레 파고다의 장소에 존재한 고대 정령 나트 신앙의 신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양곤의 최대시장인 보족시장에서는 정교한 수공예품, 칠기류(漆器類), 보석류, 도자기를 비롯해 각종 골동품과 최신 유행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이중 19번가 꼬치골목은 양곤의 밤 문화와 일상 서민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띠보 왕조의 마지막 왕궁 만달레이(Mandalay)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와 몰락을 함께한 이 비운의 도시는 미얀마의 문화와 예술, 종교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 생존 당시에 부처가 다녀갔다고도 전해지며, 당시 부처가 만달레이 언덕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며 이 아래에 위대한 도시가 세워질 것이라 예언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현재 만달레이의 사원과 승가대학의 승려의 수가 미얀마 전체 승려의 60%를 차지하고 있다하니 가히 종교의 중심지라 할 만 하다. 미얀마 제2의 도시답게 영국 식민시절 계획도시로 만들어져 구획정리가 되어 진 만달레이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도시이다. 만달레이 주변에는 영국 식민시절 영국인들의 휴양지로 개발된 꽃의 도시 삔우린, 고대도시인 샨 왕조의 수도였던 사가잉(Sagaing), 실크와 면직물의 주 생산지인 아마라푸라(Amarapura), 15세기에 번성했던 잉와(Ava), 밍군(Mingun)이 위치하고 있다. 2차 대전 중 일본군에 점령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으며, 만달레이는 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겪었다. 

꽁바웅 왕조의 왕궁은 일본군에 의해 보급창이 되었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불에 타 현재는 왕실 조폐소와 감시탑만이 남게 되었다. 번영을 누렸을 거대왕국의 왕궁터가 이제는 형식적으로 복원되어 있는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여행객들을 기다리며 빛바랜 왕가의 사진이 지난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200년 전 따웅떠만 호수 때문에 먼길을 돌아가야만 했던 스님들의 탁발을 돕기 위해 당시 만달레이의 부호였던 우베인이 만든 길이 1.2Km의 우베인 다리는 목조다리 중 현재 이용되어지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며 만달레이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다. 따웅떠만 호수 아래로 떨어지는 일몰은 가히 절경이며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삔우린(Pyin U Lwin)은 미얀마 만달레이 구에 있는 마을이다. 1887년 영국의 식민지 시절영국 제5 벵갈 경비 사령관으로 부임한 제이 메이의 성과 도시라는 뜻의 미얀마어 가 합쳐져 메묘라고 부르기도 한다. 

 

타나카와 론지 미얀마를 말하다

오랜 시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얀마. 인연이 있어야만 방문할 수 있기에 인연의 나라라고 말하고, 각지에 산재해있는 황금탑들을 보며 혹자는 황금의 나라라고 표현한다. 순수하고 착한 현지인들에게 감동을 받아 미소의 나라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미얀마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아마도 론지와 타나카가 아닐까 한다. ‘타나카’는 타나카 나무를 갈아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을 말하며, ‘론지’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입는 전통치마를 말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미얀마는 최근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개방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군부독재의 안타까운 정치적 상황 속에 인권 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현세에서 복을 지어 내세에는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그들의 소망처럼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는 미얀마를 기다려본다.

김재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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