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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억누르면 반발하고 소통하면 잔잔하더라
샌 안토니오의 명물 ‘리버 워크’는 강과 사람들의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표적인 친수 공간으로, 세계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황하의 범람으로 인해 숱한 피해가 나자 중국의 요(堯) 임금은 신하 곤에게 치수(治水)를 명했다. 곤은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요 임금은 실패의 책임을 물어 곤을 죽였다. 당시 재상이었고 나중에 요를 이어 임금에 오른 순(舜)은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수해를 막으라고 명했다. 우는 접근 방식부터 달랐다. 우는 물길을 막는 대신 다른 곳으로 소통시켰다. 물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수리 시설을 많이 만들어 논으로 끌어다 댔다. 13년 동안 집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불철주야 매달린 끝에 그는 수해를 막는 데 성공했다. 순 임금은 물을 다스린 공로로 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치수에서 친수로

‘치수(治水) 패러다임’은 종언을 고하고, 물과 생태계, 인간이 어우러지는 ‘친수(親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모범 답안을 찾기 위해 지난달 미국 남부 텍사스 주의 샌 안토니오(San Antonio) 시로 날아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원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는 ‘리버 워크’(River Walk)가 있는 곳이다. 샌 안토니오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캐럴(여) 씨는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리버 워크에서부터 음식, 문화, 날씨 등 샌 안토니오 자랑을 늘어놨다.

인구 130여만 명, 미국에서 7번째로 큰 도시인 샌 안토니오의 도시 한복판은 여느 도시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빌딩 사이로 난 작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폭 8~10m의 소담한 강이 반겨준다. 강 옆에는 키 큰 아열대 나무들이 무성해 강물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돌로 만든 산책로가 강을 따라 이어지고 카페, 레스토랑, 호텔, 쇼핑점 등이 오밀조밀 자리를 잡았다. 강물은 카페 테이블에 앉으면 발을 담글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다.

리버 워크는 샌 안토니오 도심 구간을 고리처럼 한 바퀴 돌아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총 길이가 5.8㎞밖에 안 돼 산책하기에 부담이 없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롭고 느릿느릿 운행하는 유람선, 먹이 찾는 오리, 청설모 등 야생동물의 모습이 한가롭다. 어둠이 찾아들자 리버 워크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켜지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리버워크 주변 레스토랑

골칫덩이가 효자로

샌 안토니오는 명물 리버 워크는 도시의 골칫덩이가 효자로 탈바꿈한 대표적 사례다. 리버 워크의 시작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 연장 386㎞의 샌 안토니오 강은 툭하면 범람했다. 도심 내 구간이 역ㄷ자 굽은 모양이어서 더 그랬다. 1921년 대홍수로 샌 안토니오 강이 범람해 50명이 숨지자, 아예 도심 구간의 강을 복개에 버리자는 목소리가 거셌다. 이에 건축가 로버트 허그만은 강의 배수구를 만들어 범람을 막는 동시에 강변을 따라 산책로와 연계한 공원을 조성해 도심의 미적 자산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을 내놨다.

샌 안토니오는 도심을 벗어난 곳으로 우회 물줄기를 뚫었다. 도심 내 역ㄷ자 모양의 기존 구간은 운하로 변모했다. 상류에 거대한 수문을 설치하는 방법을 통해 홍수기, 갈수기 관계없이 1.5m 깊이의 수심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산책로, 다리를 만들고 나무도 심었다.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1960년대부터는 체계적인 종합개발계획 아래 상업시설과 문화시설이 강 주변에 생겨났으며 1980년대부터는 고급 호텔과 컨벤션센터도 속속 들어섰다.

리버 워크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들의 동선, 상권과 분리된 강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번 놀러 가려면 번거로움이 있는 우리나라 강과 다르다. 리버 워크에 접한 건물들은 두 개의 출입구를 갖고 있다. 한 개는 시내도로와 통하고, 다른 한 개는 리버 워크에 연결돼 있다. 강이 이처럼 도시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곳은 드물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하천을 친수공간으로 개발할 때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리버 워크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샌 안토니오의 대표 축제 ‘피에스타’(Fiesta)가 리버 워크 일대에서 열려 관광객 천지였다. 이 축제가 열리는 10일 동안 공공기관들은 아예 문을 닫는다.

 

사람과 호흡하는 강 ‘리버 워크’

거의 1세기에 걸쳐 완성된 리버 워크이지만 난개발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관이 일방적으로 친수 공간 개발을 주도하지 않았고 시민들의 협조와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버 워크의 개발은 1937년 창설된 ‘샌 안토니오 강변개발공사’(SARA`San Antonio River Authority)가 주도하고 있었다. 샌 안토니오 강의 전반적인 정책과 개발 방식을 결정하는 반(半)공공기관이다. 1998년 결성된 샌안토니오 강 관리위원회(SAROC)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시민대표와 지역 지도자로 구성된 민간 연합체인 이 위원회는 산하에 22개 단체를 두고 있으며 리버 워크와 관련된 제반 사업의 감독과 시민의견 수렴 등 활동을 펴고 있다. 리버 워크 조성에 따른 행위 제한 등이 있지만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지 않는다고 한다. 민·관 합동으로 여론을 수렴해 정책을 추진하는 데다, 관광사업을 통한 다양한 혜택을 지역민들에게 돌아가게 한 데 따른 결과였다.

스티븐 샤우어 SARA 대외협력부장은 수변공간 개발을 추진 중인 우리나라 지자체에 대해 “사람, 경제, 환경이 잘 조화를 이루는 사업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정책 결정과 사업 추진 과정에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리버 워크의 미래

관광은 샌 안토니오의 산업 중 3번째로 비중이 크다. 연간 2천500만 명이 이 도시를 찾으며 여기에는 이 도시의 역사적 상징 명소인 알라모를 비롯해 리버 워크가 큰 몫을 한다. 포브스 지는 미국의 25개 관광명소 중 14위로 리버 워크를 선정한 바 있다.

샌 안토니오 시의 캐치프레이즈는 ‘큰 도시 속의 작은 도시 분위기’이다. 도시 구호답게 리버 워크에서 느낀 샌 안토니오의 이미지는 대도시의 번잡함이나 삭막함과 거리가 있었다. 리버 워크는 시민들의 삶과 자연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곳 사람들의 철학이 구현된 곳이다.

샌 안토니오 강변개발공사(SARA)는 ‘샌 안토니오 강 개선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었다. 1998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무려 3억5천830만달러(4천190억원)가 투입되는 대형 사업으로 2013년 8월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심 구간을 포함해 4개 영역으로 이뤄진 총연장 21㎞의 리버 워크를 조성한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물길을 뚫고 개선해 강이 도시 건축물과 문화공간을 중개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구상이다.

스티븐 샤우어 SARA 대외협력부장은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도시 가치 상승, 일자리 창출, 세수 확대 등 10억달러의 경제 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해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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