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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을 잠재운 음식 ‘탕평채’

예로부터 우리는 오색송편, 오색고명, 색동저고리 등 음식이나 옷 등 모든 것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했다. 잡채에 오색재료를 넣고 섞거나 갈비찜에도 오색의 재료가 들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네 선조들은 왜 음식에 오색의 원리를 적용했던 것일까? 음식에 있어서 음양오행이란 음과 양, 오행이 조화를 이뤄야 건강하다는 이치에 따른 것으로 음식에도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하였는데 붉은색과 노랑색은 양의 색이고 푸른색과 검은색, 흰색은 음의 색이다. 또한 인체에 비유한다면 붉은색은 심장과 관계가 있고, 노랑색은 비장, 흰색은 폐, 검은색은 신장, 푸른색은 간의 건강과 영향이 있다.

이렇듯 선조들은 음식 한 그릇에도 먹는 사람의 건강과 체질을 고려하여 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오색의 조화를 이룬 대표적 음식 중 하나인 탕평채는 녹두녹말로 묵을 쑤어 만든 청포묵에 쇠고기, 미나리, 숙주, 홍고추, 황ㆍ백지단ㆍ김을 넣고 초간장으로 새콤달콤하게 무쳐 만든 음식으로 재료도 구하기 쉽고 봄철 잃었던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라 하겠다. 이름도 독특한 ‘탕평채’가 생겨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조선은 선조 8년(1575)에 처음으로 동인과 서인으로 당파를 형성한 후, 다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리고 이후 서인도 노론(老論)과 소론(小論)으로 분리했다. 당파를 형성한 후 거의 250년간 서로 다른 사상으로 당파 간 정쟁(政爭)이 끊이지 않아 골치를 앓았다.

영조가 왕세자로 책봉된 뒤 본격적으로 노론과 소론의 당론(黨論)이 심화하여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다. 이에 영조(조선왕조 21대; 1694~1776)는 즉위하자마자 소론을 제거하고 노론 출신의 인재를 뽑아 쓰는 편당(偏黨) 정치로 인해 정국은 더욱 불안해졌다.

이에 당파 간 대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은 강력한 왕권으로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실시한 정책이 바로 ‘탕평책’이다. 이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 처음 올랐던 음식이라 하여 ‘탕평채’라 불렸다고 한다.

탕평채는 오색의 재료가 조화를 이룬 음식으로 각각의 색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푸른색의 미나리는 동인을, 붉은색의 쇠고기볶음은 남인, 주재료인 흰색의 청포묵은 서인, 검은색의 석이버섯이나 김가루는 북인을 상징하는데 주재료를 청포묵으로 사용한 것은 당시가 서인의 집권기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 ‘탕평채’의 오색이 음양오행의 원리와 각각의 당파를 대표하는 뜻도 있지만 매끈한 묵의 감촉과 사각거리는 채소의 질감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청포묵의 탄수화물, 계란과 고기의 단백질, 미나리ㆍ숙주 등의 비타민과 무기질 등 영양소 또한 조화롭게 어루러져 있어 서로 조화롭기를 바라는 영조의 깊은 마음이 담긴 음식이라 할 수 있다.

 

RECIPE

재료 청포묵 80g, 숙주 20g, 미나리 20g, 달걀 1개, 김 ¼장, 쇠고기 30g, 간장 ⅔작은술,
설탕 ½작은술, 파 ¼뿌리, 마늘 1쪽, 후춧가루 약간, 참기름 1작은술, 깨소금 ½작은술

1. 청포묵은 7×0.4×0.4㎝로 잘라 끓는 물에 데쳐 찬물에 헹궈 물기를 제거한 후 참기름과 소금으로 양념한다.

2. 파와 마늘은 곱게 다져 간장, 설탕,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쇠고기는 5×0.3×0.3㎝ 길이로 채 썰어 2의 양념장으로 무쳐 볶는다.

4. 숙주는 거두절미하고 미나리도 다듬어 끓는 소금물에 데쳐 찬물에 헹군 다음 5㎝ 길이로 자른다.

5. 달걀은 황·백 지단을 부쳐 4×0.1×0.1㎝로 채를 썰고 김은 구워서 부순다.

6. 청포묵을 초간장으로 먼저 무치고 숙주, 미나리, 쇠고기 볶은 것을 함께 넣어 버무려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김, 황·백 지단채를 고명으로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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