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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 멈출 수 없는 그 지독한 열병』정성희 지음/북랜드 펴냄

문학과 춤을 넘나들며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해온 수필가 정성희씨가 자신의 인생과 춤, 교도관(대구교도소 보안과 교위)이라는 남다른 직업 이야기를 접목한 수필집을 펴냈다. 2008년 평사리토지문학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래 천강문학, 등대문학상 등 크고 작은 문학상과 공모에 10회나 당선했지만 작품집을 출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의 가난한 사랑이 남긴 그림자를 밟으면서 자랐다. 떠오르는 것은 당신의 화난 얼굴과 매질뿐이었다. 세월을 머금은 흰서리가 내리던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야 당신의 묘소를 찾아갔다. (중략) 살아생전에 어머니는 “내가 죽으면 절대로 네 아버지 옆에 묻지 말라.”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그 바람은 그저 지나가가는 바람이 되어 쓸려갔다.’ -해원- 중에서

‘누구나 다 밥을 먹는다.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가장 우선되는 본능이다. 그러다 보니 밥 한 톨에 사람의 인격이 비굴해질 수 있다. 생에 전반에 걸쳐 밥만큼 비참하게 내 존재를 지배했던 것은 일찍이 없었다. 밥이란 쌀을 익힌 단순한 먹을거리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대선사들의 오도송보다 더 절박하다. (중략)아무리 결기가 대쪽 같은 선비라도 별 얼고 돌 우는 추위와 뼛속까지 고파오는 허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게다. (중략) 밥을 벌어본 사람은 경험했으리라. 한평생 그놈의 올무에 갇혀 노동을 해 오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중략) 아버지 발바닥에서는 언제나 짠내가 났다.’ -발바닥- 중에서

정성희의 수필은 꾸밈이 없다. 문학적 기교로 윤색하지 않고, 문학적 장치를 통해 ‘공감각적 울림’을 만들어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종소리가 오래, 멀리 울리는 것은 ‘맥놀이 현상’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힘으로 쳐도 종의 모양에 따라 울림이 달라진다. 문학도 그렇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구조물을 통해 보여주느냐에 따라 색깔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성희 작가는 그냥 생목소리를 내지를 뿐이다. 그는 ‘문학적 맥놀이’에 기대는 대신 ‘날 것 그대로의 삶’을 털어놓는다.

‘한때 내 삶도 더듬이가 끊어진 여치처럼 방향을 잃은 채 휘청거렸다. 어디를 가든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는 길목마다 있지만,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는 아무 데도 없었다. 매운 세상바람에 어기적어기적 비실걸음을 할 때마다 정해진 표지판 없이 엇길로 가다 보니, 온갖 구불구불한 옆길을 에둘러 헤매었다.’ -꾼- 중에서

‘그 학교에는 유독 통과해야 할 문들이 많다. 나는 그곳을 지키는 파수병이다. 사람들은 두터운 성벽이 둘러싸인 그곳을 큰집이라고도 부른다. (중략) 하늘도 무너져 있고 땅도 간데없다. 짙은 안개속의 마법에 걸린 듯 모든 사물들이 실종되어 있다. (중략) 세상이 한순간 그렇게 정지된 채 정박해 있다.’ -인생학교- 중에서. 작가가 근무하는 대구교도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번 작품집에는 수필과 함께 타고난 춤꾼으로 전국을 돌며 춤추던 춤꾼 정성희의 사진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작가는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콘서트를 비롯해 방송 프로그램, 각 지역의 축제, 어르신 효 잔치 등에서 오랜 세월 춤을 추었다. 아버지를 닮아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했고 잘 추었다. 현대무용은 물론이고, 학춤, 부채춤, 무당춤, 한량무 등 경계를 가리지 않고 추었다. 하지만 작가는 앞으로는 문학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인가, 그만큼 정리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곽흥렬(수필가)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는 작품 해설에서 ‘뭐니뭐니해도 수필은 자기고백의 문학이다. 정성희 작가의 삶은 부모로부터, 남편으로부터 받은 내면의 상처가 얼룩져 있었다. 수필을 통해 작가는 아픔을 치유하고 순화시킴으로써 지난날과 화해를 이루었다’ 며 ‘정 작가의 수필은 진솔성이 무기다.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쏟아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속이지 않고 드러내 놓는 고백은 때때로 소름 돋을 만큼 적나라하고 도발적이다. 정 작가의 수필에서 진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이유다’고 말한다.

정 작가는 “어릴 때 보았던 영화 ‘노인과 바다’를 기억한다. 잡은 물고기를 상어 떼에게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갖고 집으로 돌아온 노인 산티아고, 그는 인생의 패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산티아고 노인이 되기를, 그런 문학인이 되기를, 그런 예술인이기 되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248쪽, 1만 8천원.

권혁구 출판전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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