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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옥연정사, 선비의 숨결을 지키는 사람들

양반의 고장, 안동.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불러도 될 만큼, 수많은 고택과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그 중심에 낙동강이 감싸는 하회마을이 있다. 마을을 감싸도는 낙동강과 함께 전통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온 하회마을 사람들. 엄격했던 옛 유교 질서를 지금껏 지켜오면서도 탈놀이의 해학미까지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그중에서 옥연정사로 떠나본다.

낙동강에 푸른 연꽃 하회

안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회마을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발음조차 쉽게 되지 않는 하회. 낙동강물이 곧게 흐르다가 이 지역에 이르면 마을을 감싸 돌면서 흐른다고 해서 하회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마치 물에 떠 있는 연꽃과 같은 ‘연화부수형’ 지형이다. 

하회마을을 감싸고도는 화천(花川)은 낙동강의 상류이다. 화천 둘레에 넓게 쌓인 모래밭은 한여름에 가면 눈이 부실 정도 이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절경을 이루고, 조선시대 고유의 한옥과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의 민속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 하회마을만 둘러봐도 안동의 전통문화를 거의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니,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거대한 보물인 셈이다.

 

고택에 머문 외로운 묵향

하회마을의 고택들은 한옥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흙과 나무들이 얽히고 얽혀 만들어내는 한옥은 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미술작품 같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자연에 가깝게 또 자연과 잘 어울리면서도 생활하기 편리하게 지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고택 곳곳에 녹아 있다. 꾸밈없이 자연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자연색이 그대로 살아 세월이 흐를수록 멋을 더해 준다. 심심산골, 고택들이 빚어내는 고즈넉한 아름다움은 세상사에 찌든 나그네에게 마치 어머니 뱃속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고택은 때때로 나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다.

하회마을은 대대로 풍산 류씨가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부락이라 그 보전성이 높은 편이다. 하회마을에서 배출된 인물로는 조선시대 성리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서애 류성룡 선생을 들 수 있다. 하회마을에서 강 하나를 건너면 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부용대가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 길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서애 류성룡 선생이 낙향해 기거했던 옥연정사가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서애가징비록을 지었다. 왜란의 상처 속에 눈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갔을 선생의 징비록은 옥연정사에 그 아픔들이 배여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옥연정사를 쳐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애처롭고 가슴이 쓰리다.

옥연정사에는 사람이 산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곳에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대통령 표창을 받을 만큼 성공한 농업인이었던 김상철 씨는 뜻하지 않는 천신만고 고처를 겪은 끝에 옥연정사에 안기듯 고택지기가 되었다. 그는 지금 네명의 가족들과 함께 옥연정사에 살고 있다.

고택지기는 한국의 미를 느끼기 위해 드문드문 찾아드는 국내외 길손들을 위해 굳게 닫힌 빗장을 풀고 고택에 사람 사는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고택에 살고 있으니, 찾아온 길손들에게 고택을 잘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길손의 입장으로서 훈기가 도는 고택을 볼 수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하지만 김상철 씨가 처음부터 고택지기를 자처한 것은 아니다. 문화재로써의 가치가 풍부한 고택에서 살림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허투루 볼 일은 아니기에 그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아내, 김정희 씨가 손을 잡아주었다. 고택에 문외한이었던 것을 주변의 서원과 고택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고, 장 담그는 법도 배워 우리나라 전통을 지키는 데에 앞장서기로 한 것이다.

김상철 씨 가족이 고택을 지킨 지도 5년 째. 이제 고택박사가 다 되었다. 3년 전부터는 옥연정사과 서애 류성룡 선생을 알리기 위한 서당체험과 고택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옥연정사에 머물면 강직하고 소박한 선비의 정신과 전통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고, 부인 김정희 씨의 손맛이 담긴 푸짐한 시골밥상으로 느껴볼 수도 있다.

 

즐겁지만 고단한 고택지기의 하루

고택지기의 하루는 밖에서 보는 것처럼 녹녹하지 않다. 오래된 묵향이 풍기는 툇마루에 앉아 봄바람에 나부끼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처마에 걸린 하늘을 감상할 줄만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기상시간은 오전 5시. 낙동강 여명이 안개와 함께 깔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방문을 나선다. 그리곤 마당 한켠에 빗자루를 들고 이미 깨끗한 마당을 쓸기 시작한다. 신록을 머금은 5월, 낙엽하나 없는 마당에 쓸리는 것은 낙동강 안개뿐이다. 

이른 아침을 먹은 후 어제밤 달달 외워 두었던 방문 스케줄 시간표를 다시 펼쳐본다. 아내에겐 다시 홈페이지를 체크하라고 말한다. 만사에 여유로운 아내의 농 섞인 핀잔이 여지없이 날아든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오기 전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송화가루가 노랗게 앉은 툇마루도 닦아야 하고, 어제 저녁 패둔 장작도 쌓아야 하고 좁고도 넓은 마당을 동분서주하며 시선은 항상 담장 밖을 향해있다. 몇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20여분이 지나면 이윽코 방문객이 찾아든다. 한명이 오건 열명이 오건 정성은 매한가지다. 류성룡선생의 자취와 고택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오는 사람들 아니겠던가.

인사와 간단한 안내를 끝내고 소소하게 밀린 집안일을 외면 할 수 없어 돌아서지만 신경은 온통 그들을 위해 쏠려있다.

그러다 누군가가 다시 부르면 달려가 더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옥연정사에 고택지기인 나의 내공을 능가할 문화 해설사는 없다. 모두 기념촬영을 줄을서 기다리듯 이만한 스타도 없다.

그리고 산토끼와 같이 먹어도 좋을 것 같은 산나물 일색의 점심을 누군가와 함께한다.

오후의 일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정리하고, 고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참선과 명상에 딱 좋을 것 같은 옥연정사, 하지만 고택지기의 하루는 분주할 뿐이다. 어느덧 길손들이 떠나고 그럭저럭 오늘할일도 대충은 마무리 한 것 같다. 강을 따라 땅거미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고무신속 다섯 발가락도 저마다 체중을 견딜 수 없다며 아우성이다. 더덕더덕 갈라진 체 사람의 손때로 화석이 되어가는 툇마루에 이제야 엉덩이를 붙인다. 낙동강에 산을 비집고 들어온 조그만 낙조가 깔린다. 휘어진 처마가 나를 보고 빙그르르 웃는다. 나도 웃는다.

나는 옥연정사 고택지기다.

김준우, 황지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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