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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골마을의 고즈넉한 여름 풍경

이름값도 제대로 못한 장마가 그나마 명을 다하고 물러가는 것일까. 중복을 지난 여름 하늘은 온통 찌푸리기만 한 채 무더운 수증기만 내려 보내고 있다. 이따금 구름사이로 해라도 비칠라치면 더운 열기는 삽시간에 한층 더 기승을 부린다. 볼에 닿는 바람도 소용없다. 더위가 이쯤 되면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귀찮아 진다. 

 

하지만 이런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면 장소부터 고민되어 떠나기 전부터 지치기 십상이다. 아무런 계획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도심 속 고즈넉한 고택, 그리고 돌담여행, 대구 옻골마을로의 여름 여행을 추천해본다.

대구 둔산동 옻골마을은 조선시대(1616년) 학자인 대암 최동집 선생이 정착한 경주최씨 집성촌으로 팔공산을 마주하고 이어진 옻골로를 따라 이어진다. 푸르름을 스쳐가며 도착한 옻골마을의 초입에는 여름의 싱그러움이 진하게 스며든 아름드리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좁은 마을 입구를 가리고 있던 비보숲을 지나면 키 낮은 흙돌담과 돌담 아래 한껏 물오른 꽃들이 첫인사를 전한다. 

마을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안녕을 기원하는 바램으로 세워진 비보숲은 350년의 세월동안 마을의 애환까지 깊게 베어들어 그 푸르름이 더 진한듯하다. 연꽃이 핀 작은 연못 주위로 드문드문 놓인 벤치도 높이 솟은 비보숲 아래에 편안함을 더해준다.

 

경주최씨 대암공파의 파조이자 지역사회 교육에 크게 기여한 최동집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마을입구에 보존해오고 있는 ‘최동집 나무’에서 본격적인 옻골마을의 탐방이 시작된다. 이어진 키 낮은 돌담길을 따라 몇 걸음 내딛다 멀리서 다시 걸어온 길을 바라보니 후대에 내려오며 더 넓고 진하게 전해지는 선생의 뜻처럼 회화나무의 그늘이 크기만 하다.

향촌마을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한 옻골마을의 돌담길은 소박하다. 돌과 흙을 차례대로 쌓아올린 돌담과 예쁜 꽃길, 한옥의 기품을 그대로 간직한 운치 있는 돌담길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 길을 거닐고 있으니 과거로 돌아간 듯 예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 돌담과 어우러진 배롱나무 꽃이 가장 돋보였다. 떠나간 임을 기다리는 꽃말처럼 배롱나무꽃은 돌담기와에 살포시 기대어 있었다. 저녁 무렵, 햇살이 닿는 부분마다 꽃잎이 발그레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상의 여유를 선사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바뀐 듯하다. 

 

부드럽게 굽어진 옛길을 거닐어본다. 옻골가문은 높은 벼슬을 한 벼슬아치가 아니라 대군사부(大郡師傅)인 징사(徵士)를 배출한 가문이다. 그 절계 높은 선비정신은 동계정에 이르러 확인할 수 있다. 동계정은 백불암 선생의 아들인 동계 최주진 선생의 학문을 기려 세운 정자로 자손들의 강학 장소로 이용되어 온 곳이다. 지금은 전통문화체험장으로 이용되어 선비문화와 정신을 기리는 인성교육에 힘쓰고 있다. 

 

마을을 한참 둘러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간다. 평일 저녁 무렵이라 둘러보는 이들도 일찌감치 다 빠져나가 어쩌다보니 혼자 남겨졌다. 온 사방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마당으로 내려앉은 산그늘에 더위도 한풀 꺾였다. 한나절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이며 처마 밑을 이고 다녔는데 어느 틈에 마당 가운데 서서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산에서 흘러온 잔잔한 개울 물소리, 뻐꾸기 울음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옻골마을의 일부주택들은 현대식으로 개축되었지만 옛 양반가의 생활상을 만큼은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동계정을 뒤로 하고 백불고택(百弗古宅)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실제 종손들이 생활하고 있는 안채는 소박하면서도 검소한 품격이 스며있었다. 인근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돌본 인심이 녹아있는 듯 오랜 세월동안 아끼고 다듬은 고택의 툇마루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옆, 보본당(報本堂) 옆 서쪽 방은 우리나라 실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반계(磻溪) 유형원선생이 반계수록을 저술한 곳이다. 1770년에는 백불암 선생이 영조임금의 명을 받아 이곳에 교정청을 설치하여 최초의 교정본을 완료하여 나라에 바치기도 하였다. 

 

자연을 그대로 정원으로 삼은 한옥 마당 한가운데 서 있으니, 시시각각 변하는 여름산이 보인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푸른 잎사귀들이 물결치는 나무들을 보니 한결 가벼워진다. 마을 제일 위쪽 중앙에 자리한 고택에서 바라본 여름 산자락은 이처럼 아름다웠다.

이영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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