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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버린 의성 탑리마을

쉬고 싶다. 째깍 째깍 시계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조급한 마음을 부추기는 것 같아 거슬린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어디든 떠나고 싶다. 일주일만 아니, 단 3일만이라도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거의 두 달 만에 휴무를 제대로 보낼 수 있게 된 주말,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피곤함이 회복되지 못한 몸이었기에 친구에게 운전을 부탁하려 했으나 가속페달을 밟은 나의 발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일요일, 늦은 아침 고속도로는 비교적 한산하여 여유로운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어 그동안의 찌든 마음을 날려 버리기에 매우 흡족했다. 

의성 탑리마을은 대개 사람들이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이라고 하기에 잠시 조용한 곳에 머물다 오고 싶었다. 북대구 IC를 지나 왜관과 군위를 지나가는 길,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갈대와 황금빛 가을 들녘을 마주하게 되니 팍팍했던 마음이 갑자기 풍요로워 지고 메말랐던 감성이 촉촉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가을 풍경은 그렇게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었다.

눈부신 햇빛은 할머니의 약손처럼 따뜻했고,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색은 근사한 애인과 마주한 것처럼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이대로 잠시 시간이 좀 멈춰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탑리마을을 가기 전 김수환 추기경 생가 표지판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작은 초가 한 채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올라가는 길은 온통 코스모스로 뒤덮여 하늘하늘 소담스러운 모습이었다. 초가 마당 앞에 올라서니 저 아래 논과 들판이 온통 잘 익은 황금빛이고 산봉우리가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금성산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시야가 탁 트이는 것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넓어지는 것 같았다. 오래 오래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굽이굽이 논두렁 밭두렁 길을 조금 더 달려 탑리마을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담한 5층 석탑이었다. 양쪽에서 소나무가 외로운 탑을 지켜주고 품어주는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보수중이라 탑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석가탑처럼 단아한 미를 느끼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소박한 모양새이지만, 분황사 석탑과 함께 신라시대 가장 오래된 모전석탑 중에 하나로 그 귀중함이 빛나는 탑이다.

벽돌모양으로 돌을 잘라 전탑처럼 쌓아 올린 것을 모전석탑이라 하는데 의성탑리5층석탑은 모전석탑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넓은 석탑식 기단을 가지고 있다. 1층 탑신의 기둥은 배흘림 기법사용으로 목조건축의 형식을 보여주고 지붕돌은 낙수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 전탑의 양식을 하고 있다. 즉 기단은 석탑식, 탑신의 기둥은 목탑식, 지붕의 구조는 전탑식으로 모든 탑의 형식을 고루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목탑의 구조와 전탑의 구조가 결합되어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 탄생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어 지금까지 신라 석탑의 원형(原形)으로 파악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일요일 한낮, 탑리마을은 조용했다. 작고 초라하며 키 작은 건물들이 평화로워 보인다는 표현보다는 적막해 보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동네였다. 담장이 오래되어 낡고 낮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2층짜리 건물은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드물게 보였다. 마치 1970년대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 세월이 퇴보한 것만 같았다. 전국의 몇몇 근대유적, 유물이 남아있는 도시나 마을을 둘러 본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어딘가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세트장과도 확실히 다른 느낌.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 과거 속으로 여행을 온 듯 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런 곳이었다.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70세 이상 노령의 어른들이 대부분이었고, ‘서울세탁소’ 와 ‘송도사진관’ 간판은 앞자리가 두 자리 수인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서울세탁소 에서는 더 이상 드라이클리닝이나 다림질을 하지 않으며 송도사진관에선 더 이상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다. 

어째서 이곳은 40~5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낮은 시멘트 담벼락 아래 아무렇게나 놓인 커다란 빨간 고무통, 그 안에 물을 가득 받아 목욕을 하던 유년시절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을 전체의 모습을 둘러보는데 불과 한 두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가구 수도 적었다. 담장도 없는 집 마당에 널려 있는 빨래가 보인다. 빨랫줄에 널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정겹다.

군산에 초원사진관이 있다면 의성에는 송도사진관이 있다. 물론 오래전부터 폐업중이고 흔적만이 아스라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사진관의 주인어른이 엄연히 살아계신다는 점이 초원사진관과는 다른 점이다. 또한 초원사진관은 이미 영화로도 유명해 관광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이곳 송도사진관은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낡은 간판 하나만이 겨우 붙어 있을 뿐이다. 작은 창을 통해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주인어른을 만날 수 있을까 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하얀색 삽살개가 마당을 지키며 낯선 이방인을 향해 캉캉 짖어댔다. “계십니까. 아무도 안계세요?” 하고 문을 조심스레 열었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셨다.

송도 사진관의 주인인 황호윤 할아버지를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담소중이시던 할아버지는 반갑게 취재에 응해주셨고 초라한 간판 앞에서 밝게 웃어주셔서 감사했다. 올해 82세인 황 할아버지는 35년 동안 이곳에서 사진관을 운영하였고 1991년 의성군 금성면 이장직을 맡고부터 사진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전에는 의성군사진가협회 회장까지 맡으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마당 안쪽의 큰 방에 있는 사진촬영장비와 조명세트를 선뜻 보여주면서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찍었어.”라며 자세한 설명까지 해주었다. 창고 같은 방 한 쪽 벽에 매달려 있는 칠판은 1970년대에 제조되어 나온 표식까지 있어 세월의 간격을 알려주었다. 

보건이용소 앞에서 만난 황용기 할아버지(82세). 30세 때 의성으로 들어와 지금껏 쭉 살고 있으며, 아직도 동네 어르신 머리를 깎고 다듬어준다고 한다. 맞은 편 건물엔 참기름 들기름을 짜서 팔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몇 발자국 더 걸어가면 ‘옷꼬시 강정’을 만들어주는 가게도 보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만 해 먹던 ‘오꼬시 강정’이 생각났다. 한 보따리 만들어 놓고 며칠 동안은 배부르게 먹었던, 배고팠던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반갑지 않은 기억이라 마음이 잠시 불편해지긴 했지만….

하루하루가 쳇바퀴 돌듯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날들에서 잠시, 시간여행자가 되어 낯선 풍경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면 경북 의성 탑리마을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근처 탑리역의 역사도 돌아보고 조문국박물관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특히 조문국박물관 입구 광장에는 탑리5층석탑 모형을 세워 놓았다. 인근 조문국사적지는 고분군과 작약꽃밭으로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유경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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