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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만나다 - 성주 독용산성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스치며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농익은 가을이다. 하지만 유독 주말이 되면 하늘은 흐려졌다. 성주로 가기 전날 역시, 혹여나 날씨가 좋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잠이 들었다.

출발을 앞둔 일요일의 이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본능적으로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서 희미한 빛이 침대 위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마냥 밝다고 하기에는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잠에서 온전히 깨지 않은 채 억지로 몸을 뒤척여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어제와 같은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다. 불과 어제까지 천고마비의 계절임을 뽐내던 그 찬란했던 하늘이 하필이면 오늘, 탁하디 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일교차 때문에 생긴 짙은 안개이길 바라며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성주로 향했다.

느림의 미학

독용산성으로 향하는 길, 내비게이션은 당연한 듯 나를 고속도로로 안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도를 따라 가을의 낭만을 즐겨보기로 했다. 목적지까지 약 50km.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꼬불꼬불한 길, 안개 자욱한 산길과 황금빛 들판, 한적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가을을 느껴보았다. 그렇게 약 1시간을 달리자 지평선 끝자락에 우뚝 솟은 산이 보인다. 바로 독용산이었다.

독용산으로 들어서는 초입부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지극히 평범한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한 가정집 앞 텃밭의 해바라기 밭을 지나 좁디 좁은 길이 나오는데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독용산을 오르는 내내 좁다란 길이 이어졌다.

예로부터 모름지기 등산이라 하면 지상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구식 생각과는 달리 요즘의 등산은 보통 산 중턱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런 의지를 받들어 독용산 정상 인근의 주차장까지 단숨에 차를 타고 이동했다. 

꼬불꼬불 굽이치는 길을 따라 도착한 독용산 주차장. 외진 곳에 위치한 만큼 주차장의 규모도, 사람도 많지 않았다. 동네 산이라고 하기에는 높은, 인기 있는 산이라고 하기에는 한적한 산이었다. 독용산의 위치를 증명해주듯 등산로 또한 험한 비포장길로 시작되었다. 터벅터벅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인적이 너무나 드물었던 탓에 이곳이 과연 등산로인지 아닌지를 수차례 고민하며 걸었다. 그런 고민도 잠시, 독용산의 온전한 그 자연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이곳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등산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자 바닥 곳곳에 떨어져있는 도토리들이 보였다. 기념품으로 가지고 오려고 했지만, 자연에 대한 예의로 주웠던 이 도토리들을 도로 산에 두고 왔다. 한걸음 한걸음 독용산을 오를 때 마다 이따금씩 오르내리곤 하던 산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독용산성에 오르기 위해 오르던 이 산은 가산산성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독용산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었다.

온전히 숲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는 아직 때묻지 않은 자연인 것을 증명하듯 여러 새들이 제각각 울음소리를 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풀벌레들도 한몫 단단히 했다. 얼핏 보더라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 피톤치드를 마시며 산속을 걸으니 비로소 일상의 스트레스가 서서히 치유되는 것 같았다.

등산로 한켠에 느닷없이 거대한 바위를 만났다. 깎아지듯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바위를 만나자 갑작스레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나무로 둘러싸인 바위는 마치 피난처와 같았다. 독용산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내게 꼽으라면 단연 장수말벌을 꼽을 것이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장수말벌들의 우렁찬 날개짓 소리에 머리털이 쭈뼛쭈뼛 섰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이 바위 위에서만큼은 장수말벌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었는데, 덕분에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쉬어갈 수 있었다.

독용산성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 위치한 독용산성은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산성이다. 소백산맥 줄기인 해발 955m의 독용산 정상에 위치한 이 산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약 1,500년 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 할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산성이다.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이 산성이 다시금 이 세상에 알려진 때는 바로 임진왜란이 있던 시기였다.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당시 평지에 축조되어있던 도성들은 적으로부터 방어가 어려웠던 탓에 산성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였는데, 독용산성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조선 숙종(1675년)때 개축하였다고 한다. 독용산성은 특별히 높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용수 공급이 편리하여 그 가치가 더 뛰어났다고 한다.

약 30분을 걸어 산성에 도착한 독용산성. 동문에 도착하자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연신 산이 참 좋다는 말을 내뱉으며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세워진 산성을 따라 걸어가자 까마득한 아래로 펼쳐진 성주의 전경과 더불어 성주댐이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늘어선 산성의 일부를 보며 그 거대한 규모를 어림잡아 짐작 할 수 있었다. 어제와 같은 청명한 하늘이었다면 저 멀리까지 볼 수 있는 훨씬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가파른 독용산성을 따라 오르다 보니 꽤나 힘들었다. 잠시 숨도 고를 겸 중턱에 앉아 쉬어 가기로 했다. 평소 등산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맞는 불편함이라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다. 평소 여행을 즐기는 편이지만 ‘왜 우리는 그토록 여행을 원할까’란 질문에 맞는 답을 찾긴 힘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수 있었다. 여행이란 그곳이 어디든 간에 일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평범한 것들이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용산이 주는 불편함과 천혜의 자연은 그 의미가 크다. 조용히 산성 위에 앉아 이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기에는 말벌들의 성화가 남달랐지만 말이다.

성산가야의 터전 성주

성주는 참외로 유명한 고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그 성주가 대구에 인접한 지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잘 없다. 성주는 옛 성산가예의 터전으로 성주읍 동남쪽의 성산에는 크고 작은 무덤들이 능선을 따라 밀집되어있다. 크고 작은 고분군은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순장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월향면에서는 얼마전 ‘1박 2일’에서도 소개된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성산이씨의 집성촌 한개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수 백 년 된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 찬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지금도 6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그 밖에도 세종대왕 18명의 왕자들의 태(胎)가 한곳에 위치할 정도로 지리학적으로 뛰어난 명당 중 하나라고 할만큼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고장이다. 여기저기 붐비는 인파에 지친 사람에게는 성주의 편안한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영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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