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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가을을 담다

추억속의 경주

경주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여행지다. 봄이 오면 벚꽃이 아름드리 피어나고 여름이면 골목골목 마다 능소화가 우리를 반겨준다. 또 가을에는 산으로 들로 진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능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다. 

경주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흔히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을 떠올리곤 한다. 학창시절 경주의 기억은 대부분 불국사나 석굴암, 박물관 등 신라의 유적에 관한 것이었다. 철없던 그 시절에는 이곳들이 모두 그저 수학여행의 흔한 코스이기에 따분하기도 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곳이 아님은 분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니고 나서 여행의 맛을 알아갈 때쯤 다시 들린 경주는 그 당시의 경주가 아니었다. 경주 곳곳에 흩어져있는 신라시대의 유적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알게 되고 계절마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면서부터 경주는 내게 아주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고 이제는 해마다 꼭 한번 이상은 찾는 여행지가 되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얇은 티 한 장만 입어도 충분했던 날들이 지나가고 그 얇은 옷들 위로 겉옷 하나를 걸칠 정도의 날씨가 되면 경주의 가을이 시작된다. 

경주를 여행하는 방법은 저마다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지만 우선 경주 시내권 여행지를 둘러보려면 경주터미널에서부터 시작해 노서리, 노동리 고분군을 거쳐 대릉원, 계림, 반월성 등 시내권의 다양한 신라시대 유적을 돌아볼 수 있다. 시내권 여행은 도보 또는 터미널 앞에 즐비한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다니면 된다. 그리고 시내에서 약간 거리가 떨어졌지만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불국사나 석굴암, 도리마을 등을 찾아서 가을을 즐긴다면 더 없이 즐거운 가을날의 경주를 즐길 수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의 가을

흔히 경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불국사는 가을이 되면 입구부터 경내까지 오색찬란한 단풍이 바람에 일렁거리며 경주를 찾아온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경주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50여분 달리면 불국사에 도착하게 되는데 가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국사를 찾기에 오후의 시간보다 이른 아침 또는 오전에 찾는 것이 좋다. 불국사 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리고 불국사 입구 매표소까지 걸어가는 단풍 길도 아름답고 표를 끊고 경내까지 들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단풍들도 경주의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특히 반야연지에 반영되는 하늘과 단풍이 어울리는 풍경은 불국사에서 빼먹지 않아야할 포토존이다. 

불국사를 나와 석굴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1시간 정도의 도보이동 또는 이 두 곳을 오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버스 배차 시간표를 보고 계획을 짠다면 보다 효율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석굴암을 처음 찾았던 때는 2009년 가을이었다. 그 당시 수학여행 인솔자로서 이곳을 찾았었는데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곳을 처음 찾았기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둘러본 기억이 있다. 석굴암은 보존상 투명 유리창 너머로 그저 바라만 봐야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지만 경주를 찾는다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은 한 코스로 묶어서 다녀와야 하지 않겠는가. 또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힘들지만 석굴암에서 차량으로 토함산 정상부근으로 가면 풍력발전단지가 있는데 경주의 가을바람을 느끼며 강원도 대관령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통일전과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의 가을

불국사에서 단풍 구경을 하고 곧장 버스를 타고 통일전과 경북산림환경연구원으로 향한다. 통일전은 입구의 은행나무길 유명한데 노란 은행잎이 2차선 양옆으로 100여m 이상 이어져있다. 수시로 차들이 다니는 곳이기에 이곳을 구경할 때에는 항시 주위를 살펴야 하지만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져있는 모습을 보며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발이 차도에 올라가 있기도 하다.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에는 가을이 되면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마로니에나무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바닥에 다소곳이 떨어진다. 오래전부터 사진사들로부터 유명한 곳이었던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은 이제는 입소문이 나서 가을에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입구의 실개천 위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은 외나무다리위에 오르면 가을단풍과 어우러져 제법 멋진 인증사진을 담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말에 이곳을 찾는다면 외나무 다리위에서 사진을 담으려고 여려명이 줄을 서 있는 재미난 풍경도 볼 수 있다. 마로니에 잎 떨어진 길 위로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걸으며 누군가는 사진을 열심히 찍고 누군가는 같이 온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또 누군가는 사랑을 속삭인다. 

 

도리마을과 운곡서원의 가을

경주시내에서는 제법 떨어진 곳이지만 가을날 경주 여행에서 빼먹으면 섭섭한 곳이 두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도리마을과 운곡서원이다. 도리마을은 마을에 제법 큰 규모의 은행나무 군락지들이 있어 가을이 되면 마을 뒤가 온통 노란색으로 치장된다. 정리되지 않은듯 무심하게 자라나 있는 은행나무들 사이로 걷는 재미가 쏠쏠한데 가을의 절정에는 머리 위에 빼곡히 수놓아져 있는 은행잎이 노란 하늘을 보는 듯 눈을 즐겁게 하고 늦가을에는 바닥에 노란 은행잎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특히 나무 틈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그 햇살이 바닥에 부서지면 더없이 아름다운 가을날의 도리마을을 만날 수 있다. 통일전의 은행나무길도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는 도리마을의 은행나무 군락이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더 넘치는 곳이다. 

그리고 운곡서원 역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인데 350년 이상의 큰 고목 한 그루가 압권인 곳이다. 이곳은 오후의 시간보다 아침 시간대의 햇빛이 아름답게 들어온다. 스산한 가을 아침 기온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포근한 햇살이 운곡서원과 은행나무로 드리우면 운곡서원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은행나무는 성인 세명 이상이 팔을 벌려야지만 나무 기둥을 온전히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크다. 도리마을과 운곡서원은 시내권의 여행지와는 달리 대중교통의 배차시간 간격과 이동시간이 오래 걸려 멀리서 버스나 기차로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에겐 찾아가기가 어려워 다소 아쉽기도 하다.

경주의 가을밤

가을날의 경주를 낮에만 즐겨야할까? 대릉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첨성대를 거쳐 동궁과 월지로 이어지는 경주의 가을밤 야경 코스도 있다. 경주에는 수많은 고분군이 있다. 그 중 대릉원은 신라의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의 능이 모여 있는 곳인데 밤이 되면 곳곳의 가로등 불빛이 능과 어우러져 낮과는 다른 매력의 대릉원을 만날 수 있다. 영화 ‘경주’를 보면 주인공인 박해일과 신민아가 능위에 눕는 장면이 있는데 간혹 이 장면을 따라하려다가 관리자분들에게 혼을 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릉원을 나오면 첨성대가 저만치 앞에 있다. 신라시대의 밤하늘에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을 이곳에서 관측을 했다고 하니 괜히 나도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아보려 애를 써본다. 불이 켜진 첨성대를 보고 10분만 걸어가면 동궁과 월지에 다다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을 안압지라고 부르는데 2011년부터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경주의 밤 야경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는 그 명성에 맞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인 7~9시 사이는 피하는 게 좋다. 특히나 가을밤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생각이상으로 많기에 적당히 어두워진 시간에 저녁을 먹고 대릉원이나 첨성대의 야경을 본 뒤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는다면 보다 여유롭게 신라의 달밤을 느낄 수 있다.

이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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