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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하는 디자인』방일경 지음/미술문화 펴냄

아프리카의 한 마을. 식수가 부족한 이곳에는 아이들이 아침 일찍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긷기 위해 나선다. 몇 시간을 걸어가 물을 길어오지만, 무거운 무게 때문에 물은 절반 이상 흘러버리고 없다. 딱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접한 디자이너들이 드럼통 모양의 굴리는 물통 ‘큐드럼’을 만들었다.

이후 아이들의 삶은 달라졌다. 아이들은 이전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의 물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물동이를 놀이하듯 굴리게 됐다. 게다가 물을 긷느라 갈 수 없었던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면서 인생 전체가 달라졌다. 이처럼 디자인으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배려하는 디자인’이 출간됐다.

배려 없는 디자인이 가져온 문제

배려가 결여된 디자인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손실은 생각보다 크다. 비슷하게 생긴 약병 때문에 약을 잘못 복용하는 사례가 생기고,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아파트는 이웃 간의 소통을 단절하여 개인 소외를 낳았으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 컵은 지구촌 곳곳에서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는 아이디어나 기술이라기보다는 태도의 문제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환경을 배려하는 디자인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나간다. 미국의 사회적 기업 언차티드 플레이는 무엇이든 공처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행위에서 착안해 축구공 전구인 ‘싸켓’을 개발했다. 낮에 축구공으로 가지고 놀면 내부 메커니즘이 작동해 전기가 생성되어 밤에는 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영국의 스타트업인 컵클럽은 다회용 컵 테이크아웃 시스템을 구축해 일회용 컵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했지만, 인간과 환경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고 급기야 개인과 사회, 환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이런 현실을 꼬집고 디자인에 필요한 태도를 되살리기 위해 ‘인간적인’ ‘우호적인’ ‘생태적인’으로 목차를 구성했다. 그리고 슈퍼노멀 디자인, 실버 디자인, 도시재생 디자인, 에코 디자인, 제로 디자인 등 총 15가지의 디자인 개념과 여러 사례들을 소개한다.

 

노인과 개발도상국, 환경을 위한 디자인

인건비가 점점 증가하면서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인건비 절감은 물론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기 작동이 서툰 노년층은 키오스크 앞에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키오스크는 노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반면 노인을 ‘배려하는 디자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란차베키아+와이’의 가구는 노인의 자립을 돕는다. ‘아순타 의자’는 앞으로 기울어질 뿐만 아니라 발판을 갖추어 노인이 혼자서도 쉽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하고, ‘투게더 케인’은 지팡이에 수납공간을 더해 노인의 활동 범위를 넓힌다.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가 암스테르담에 지은 ‘보조코 아파트’는 노인용 아파트로 편리함을 유지하되 모든 가구가 일조량을 확보하고, 소외되지 않은 채 공동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디자인도 책을 통해 소개된다. 우리나라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2016년 기준 98.2㎏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감축하겠다는 환경부의 정책에 따라 일부 프랜차이즈는 종이 빨대를 도입했으나, 특유의 향과 내구성 문제 때문에 크게 호응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롤리웨어가 개발한 ‘먹을 수 있는 빨대’는 이러한 현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유기농 사탕수수와 해조류인 한천 등 식재료를 주재료로 하여 100% 자연 분해되며 내구성 또한 뛰어나다. 생태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한 에코 디자인이자 제로 디자인이다.

316쪽, 1만8천원.

 

지은이 방일경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고 영주에서 자랐다.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경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숙명여자대학교·인천대학교·경희대학교에서 강의했다.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 시민큐레이터로 선정되어 ‘오.두.방_五色話頭房’전을 기획·운영했으며, 총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권혁구 출판전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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