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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역사의 조각 찾기 - 김해 분산성

천연암벽이 보이는 울창한 숲 사이로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덕분에 그리 높아 보이지 않던 산을 오르는 내내 이마에 맺힌 땀 구슬은 떠나갈 줄 모른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산 아래서 보았던 암벽에 손이 닿을 듯 가까이했을 때,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험준한 성벽이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역사의 품에 안겨버린 신비로운 왕조가 있었던 곳’

어쩌면 찬란했을지도 모를 과거의 흔적 위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 이 아이러니한 부조화의 관계 속에서 묘한 감흥에 빠져든다.

 

분산성의 과거와 현재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성 주변으로 옛 가야들의 무덤과 수로왕비릉, 가야의 건국설화와 관련이 있는 해은사와 구지봉이 있고, 성터의 선정법이 우리나라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테뫼형을 따르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추축 연대가 삼국시대이며, 가락국의 중심 근거지를 이룬 산성으로 판단된다.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박위(朴蔿)가 수리하여 쌓은 뒤, 임진왜란(1592)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에 정현석 부사가 다시 개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전체 923m에 달했던 성벽은 모두 허물어지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성벽은 50여m에 불과했다. 

김해시는 이러한 분산성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2000년부터 노력해 왔으며, 지난해까지 동문 인근에서 북문과 서문을 거쳐 봉수대까지 470여m에 걸쳐 높이 5~15m, 너비 3~4m의 성곽을 복원했다.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북문은 그대로 존치했으며, 서문과 동문은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또한 전체 성벽 중 1871년 이후 현재까지 남아있는 50여m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키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2021년까지 남안문에서 봉수대까지에 이르는 300여m의 복원하는 등 분산성 전체를 완벽하게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해은사

분산성의 정상부근에는 특이하게도 해은사라는 절간이 하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가락국이 건국되고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무사히 바다를 건너왔기에 숱한 풍랑과 역경을 막아준 바다 용왕의 은혜에 감사한 뜻으로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또한, 대왕각이라는 전각 안에는 현존하는 영정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정인 수로왕과 허황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는 허황후가 인도의 망산도에서 가져왔다는 봉돌이 있다. 김해시에는 이렇게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과 허황후의 설화와 관련된 곳이 많이 있으며, 수많은 사찰이 남방불교 전래설에 입각하여 그 창건을 얘기하고 있다. 해은사 또한 그런 사찰들 중 하나이다. 

봉수대에서의 쉼

해은사를 지나 상쾌한 공기를 가득히 들이쉬며 봉수대에 올라섰다. 파란 하늘 아래로 산 정상부를 두르고 있는 분산성이 보이고, 그 아래로 굽이 굽이 지며 끝없이 뻗어있는 서낙동강 물줄기와 함께 반듯하게 나누어진 김해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부산 북구 화명동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김해 시가지와 내외 신도시, 국립김해박물관이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장유 신도시와 김해, 창원의 경계인 불모산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방팔방의 경계가 가능했던 분산성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왜구의 침입을 막는 최전방 전선으로, 봉화로는 왜구의 침입을 한양까지 전달하고, 타고봉(만장대)에 달아 놓은 북으로 위험을 알리는 등 우리나라 동남부 지역의 최전선 요충지였다. 기록에 따르면 분산성의 봉수대는 봉대가 5개인 ‘5봉수’로 추정되어진다. 하지만, 모두 복원하지 못하고 1997년에 봉대가 1개인 단봉으로 복원한 것이 현재의 이 봉수대이다. 분산성의 봉수대는 부산 강서구 간비오산에 위치한 성화예산 봉수(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 중 하나)에서 올린 횃불과 연기를 보고 김해시 진영읍 자암산 봉수와, 경북, 충북, 경기도, 한양으로 까지 연결 됐다고 전해진다. 

가리는 것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광활한 풍경에 그만 나도 몰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수백 년간 김해를 굽어본 천년수(天年樹)를 스치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도심의 생활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과거와 현재, 도심과 자연의 묘한 어울림을 바라보며 미리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그 흥을 더해본다. 떠다니는 구름에 시원한 바람에 기대어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책도 넘겨보고 사진도 담아보며 소소한 여유를 가져본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에 그만 너무 늦장을 부려서일까? 푸르기만 하던 하늘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펼쳐지는 분산성의 또 다른 모습. 환호성을 터트리며 바라봤던 낮과는 달리 늦은 오후의 분산성은 보다 더 감성적인 무언가가 마음을 두드렸다. 설명하기 힘든 감흥에 취해 잠시 멍해졌던 사이 붉은 노을마저 사라지고 순식간에 캄캄한 어둠에 잠긴다. 밝게 떠올랐다가 사그라지는 분산성의 하루에 이제는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찬란했던 가야의 모습이 문득 스쳐간다.

노성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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