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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달빛, 불빛 어둠 속 빛으로 물들다 - 포항운하

다가온 가을의 고운 색깔을 그대로 입은 듯한 관광객들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포항 운하 크루즈 선착장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뱃놀이에 들뜬 이들의 마음을 계속 흔들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기분 좋게 이야기 나누는 뒷모습에 흥겨움이 묻어난다. 형산강 지류를 이어주는 구하도(舊河道)가 사라짐에 따라 복원된 동빈내항의 물길이 흩어진 사람들의 관계 또한 이은 듯하다.

동빈내항 복원 프로젝트는 동빈내항과 형산강을 잇는 1.3km의 수로를 개설해 흐르는 강물 따라 바다까지 이어지는 물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 사업은 50만 포항시민의 숙원사업으로 20년 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으나 실질적 사업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60년대 후반 포스코를 건설할 당시 형산강 유로를 변경하고 하천을 차단하면서 물길이 막혀 이후 점점 비린 악취를 풍기며 오염된 모습으로 변했다. 때문에 수질 개선을 위한 물길 잇기뿐만 아니라 시민의 휴식 공간과 생태문화공간의 회복을 위해 포항운하가 건설되었다. 

 

이어진 물길은 그 곳으로 사람을 모이게 했다.

주말이면 예약이 금방 끝나버릴 만큼 인기 좋은 뱃놀이는 선착장을 시작으로 운하를 따라 이어진 죽도시장, 동빈내항, 송도해수욕장을 도는 8km코스와 죽도시장과 동빈교를 거치는 6km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미리 예매를 하더라도 크루즈 승선시까지 약간의 기다림은 필수이며, 번호표대로 46인승 연안크루즈와 17인승 리버크루즈에 차례대로 탑승하게 된다. 가을 햇살 아래 내달리는 크루즈에 승선한 사람들은 물론, 다음 배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만연하다. 당장 달리는 배에 몸을 싣지 못한들 어떻겠는가. 지금 바로 이곳에서 자연이 베풀어주는 은혜로운 햇살, 바람,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포항 운하까지 왔다면 하얀 포말을 만들며 속도를 올리는 크루즈를 따라 선착장에서 죽도시장까지 이어지는 가을 운하공원을 빼놓지 말고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뱃놀이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물길 가까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자칫하면 크루즈가 만들어낸 물결에 신발이 젖기 십상이지만 해안가로 밀려오는 큰 파도를 피하듯 발을 동동거리며 물길을 피해가는 것도, 빠르게 스치는 크루즈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는 것도 운하공원을 걷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기에 창의적이고 유쾌한 조형물들까지 곳곳에 조성되어 그 재미가 더해진다. 

하지만 걷는 길에 빨간 아치다리에 올라서서 경치를 바라보니, 이곳과 어울리는 색색의 풍경이 좀 더 조성되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그 길 끝쯤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점점 더 짙어진다.

작은 어선들이 나란히 정박된 한산한 동빈내항의 모습과는 반대로 바다가 그대로 옮겨진 듯 살아있는 생선들이 가득한 죽도어시장은 늦은 오후지만 활기가 가득했다. 돌아오는 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풍경을 선사해준다.

 

붓으로 선을 그은 듯한 구름에서 가을의 자취가 느껴지는 곧게 뻗은 하얀 구름으로 잔잔한 바닷바람에 밀려 구름의 모양이 빠르게 변한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하늘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다. 

하루하루 다급하게 살았던 조여진 마음들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있어서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위의 풍광들이 다채롭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내 흐르더니 어느새 오후의 쨍쨍한 빛이 얼마간 약해지고 주위에 황혼의 기척이 섞이기 시작한다. 해는 천천히 기울어 하늘의 엷은 파란색이 보다 깊은 파란색으로 천천히 옮겨지더니 또 다른 색감이 어우러진다.

하늘은 이제껏 본적 없는 고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 빛을 받아 운하의 잔물결은 흩어진 유리조각처럼 신비롭게 빛났다. 선홍빛 노을처럼 기분 좋은 가을의 저물녘이다.

 

점점 그 시간이 깊어지더니 낮보다 화려한 포항운하의 모습이 빠르게 드러난다.

공장의 붉은 불길, 거대한 가스탱크와 굴뚝, 그곳으로 달리는 대형트럭들의 행렬.

저마다 조명이 켜지자 잠시 무덤덤해진 풍경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운하의 물빛, 달빛, 불빛.

어둠속 빛으로 물든 모든 풍경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며 바람에 밀려 천천히 불 켜진 밤 운하를 거닐어본다. 나의 것도 혹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운하의 밤이 마음을 자꾸만 간질인다. 오늘 아주 특별한 가을 바다를 보게 해준 포항운하가 그동안 꽉 막힌 마음의 감성까지 뚫어낸 것 같다. 왠지 오늘, 시인이 된 느낌이다.

이명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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