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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생정 대청마루에 앉아 옛 선비들의 구곡문화 즐겨보세 - 영강
봉생전앞의 노송

영강의 아름다움이 피워낸 구곡문화

영강에는 수많은 문화가 생성되고 소멸됐다. 예부터 수많은 선비 묵객들이 영강을 찾아와 물을 노래하고, 산을 노래하고, 길을 노래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구곡문화(九曲文化)다. 

경북대 김문기 교수는 “문경은 여러 산과 그 산들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순박하면서도 근면한 사람들이 각 굽이마다 깃들어 아름다운 삶을 영위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조가 유학을 국시로 정하면서 사상과 생활에 변화를 초래했는데, 그 중 주자(朱子)를 존숭(尊崇)하면서 그의 무이도가(武夷櫂歌)에 관심을 가졌다.”면서 “무이도가의 배경이 된 무이산의 무이구곡을 성리학자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직접 구현하고자 하는 데서 우리나라의 구곡원림(九曲原林)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구곡원림의 경영은 아름다운 경치가 있어야 하고, 성리학자가 그곳에 함께해야 생기는 선비문화다. 성리학자들이 관직에 나갔다가 물러나 은거하거나, 아예 관직에 나가지 않고 구도(求道)한 선비들이 경영한 것이다. 영강에는 이런 구곡이 어느 강보다 많은 곳이다. 가은읍의 선유구곡(仙遊九曲), 선유칠곡(仙遊七曲), 농암면의 쌍룡구곡(雙龍九曲), 문경읍의 화지구곡(花枝九曲)이 그것들이다. 

 

선유구곡 

선유구곡은 대야산, 둔덕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맑은 시내를 따라서 약 1.8㎞에 걸쳐 펼쳐져 있다. 선유구곡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선이 노닐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물굽이다. 평평한 암반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위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수천 년 동안 흘러 기이한 물길을 이루고 있다. 굽이마다 빼어난 노송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이 전개되고 비경들이 숨어 있다. 특히 최치원(崔致遠), 정경세(鄭經世), 이재(李縡), 남한조(南漢朝), 신필정(申弼貞) 등이 즐겨 찾아 자취를 남겼다. 

제1곡부터 9곡까지 옥하대, 영사석, 활청담세심대, 관란담, 탁청대, 영귀암, 난생뢰, 옥석대 등이다. 이 아홉 굽이의 이름은 각각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있으며 굽이의 순서를 고려해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선유칠곡

선유동 입구의 산기슭에 칠우정(七友亭)이 자리한다. 이 정자는 대한제국 시절 가은지방 7인의 벗들이 나이도 서로 가깝고 정도 두터워서 자주 모임을 갖고 선유동의 산수를 즐겼다고 한다. 

칠우정은 의친왕 이강이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일곱 사람들의 호에 어리석을 우(愚) 자가 있는 데서 칠우정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일곱 굽이는 제1곡 칠우대(七友臺), 제2곡 망화담(網花潭), 제3곡 백석탄(白石灘), 제4곡 와룡담(臥龍潭), 제5곡 홍류천(紅流川), 제6곡 월파대(月波臺), 제7곡 칠리계(七里溪)다. 

 

쌍룡구곡 

쌍룡구곡은 영강상류인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에 있다. 

도장산(道藏山) 기슭에서 약 4㎞에 걸쳐 전개된다. 도장산, 불일산(佛日山), 청화산(靑華山)의 기암괴석과 그 가운데를 흐르는 내서천(內西川), 쌍룡천(雙龍川)이 서로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용들이 이곳에서 놀았다고 해 용유동(龍遊洞)이라 하였고, 이 동천의 깊은 용추(龍湫)에 두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해서 쌍룡계곡(雙龍溪谷)이라 한다. 

쌍룡구곡을 구성하는 각 굽이의 명칭은 남다른 의미가 존재한다. 단순히 옛날부터 전해오는 지명을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새롭게 명명한 이름이 많다. 제1곡 입문(入門)은 도문(道門)에 들어가는 것을, 제2곡 지도(志道)는 도에 뜻을 두는 것을, 제3,4곡인 우연(于淵)과 여천(戾天)은 솔성(率性)을, 제5곡 방화(放化)는 대이화지(大而化之)를, 제6곡 안도(安道)는 도에 편안함을, 제7곡 낙경(樂耕)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제8곡 광명(廣明)은 천하에 명덕(明德)을 넓히는 것을, 9곡 홍류(紅流)는 세상을 피하는 도원을 말한다. 

이름만 들어도 영강은 세속과는 거리가 먼 이상향을 말하고 있다.

 

화지구곡 

화지구곡(花枝九曲), 일명 신북구곡(身北九曲)은 옥소(玉所) 권섭(權燮)이 문경군 신북면 화지동(현 문경시 문경읍 당포리)에 거주하며 경영했다. 화지구곡은 신북천(身北川)과 초곡천(草谷川)이 합류해 영강(潁江)으로 흘러드는 마원(馬院)에서 시작해 신북천 상류인 하늘재에 이르는 아홉 굽이로 이루어졌다. 

화지구곡은 제1곡 마포(馬浦), 제2곡 성교(聲校), 제3곡 광수원(廣水院), 제4곡 고요성(古要城), 제5곡 화지동(花枝洞), 제6곡 산문계(山門溪), 제7곡 갈평(葛坪), 제8곡 관음원(觀音院), 제9곡 대원(大院)이다. 

진남교반

서애 류성룡 선생과 영강 

영강천 진남교반 정상에 있는 봉생정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이 자주 들른 곳이기도 했다. 서애는 고향인 안동 하회마을과 한양을 오갈 때 문경새재를 넘어 이 봉생정에서 여독을 풀고 쉬어갔다. 

이 때문에 영강의 지형과 지세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서애는 자신이 쓴 ‘징비록’을 통해 임진왜란 중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였던 진남교반을 너무 쉽게 왜군에게 내 준 점을 가장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서애는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진남교반보다 더 풍광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었을까? 하지만 이 나라가 생기고 가장 큰 전쟁인 임진왜란에서 진남교반의 고모산성과 토끼비리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왜군들에게 내어 주었으니 가장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기술했다. 

진남교반을 거쳐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기 위해선 꼭 찾아야 하는 영광의 길이기도 했고,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이 이 길을 통해 전국을 유린한 상처의 길이기도 했다. 

 

영강과 문경 초점 

2011년 6월 문경새재에서는 뜻 깊은 일이 있었다. 경상북도와 문경시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와 있는 낙동강 발원지 중 하나인 문경 초점(草岾)을 알리는 표지석을 650여 년 만에 세운 것이다. 초점은 문경새재를 조령이라고 표기하기 전 옛 문헌상에 나타난 문경새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단종 2년, 1454년 간행)에는 “낙동강의 근원은 봉화현 태백산 황지, 문경현 북쪽 초점, 순흥 소백산이며, 그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기록돼 있다. 

경북도는 낙동강 명칭 유래지인 상주에는 지난 10일부터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을 임시 개장하였으며, 낙동강 주도권 선점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물은 해자(垓字·성 주위에 둘러 판 못)를 만들고 성(城)을 만들어 나라와 백성을 지켜냈다. 문경새재 성 앞에도 이 해자는 외적을 가로막고, 물이 나가는 문이 있었다. 이름하여 수구(水口). 수구 중간에는 사람 모형의 돌이 성을 지키고 있다. 얼마 전까지 초곡천이 흐르는 곳에는 성이 없었는데, 100년 전 문경의 사진을 모으다가 내 위를 가로지르는 성과 수구가 있는 사진을 발견, 이를 토대로 복원해 문경새재 1관문 성 모습이 완성되었다. 

문경 초점은 영남인들이 물을 따라 넘었던 고개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은 바로 낙동강을 따라 난 이 길이다.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분수령 정점에 문경 초점이 있고, 이 주변의 백두대간 골짜기는 삼수(三水-한강, 낙동강, 금강)를 발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유 기자  kimss78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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