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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의 신통력이 살아있는 청도 적천사

청도 원리. 주말이면 가족들과 가끔 큰집에 들러 두부를 만들어 먹는다. 이른 아침 돌담이 정겨운 큰집에 도착해 가마솥을 깨끗이 씻고 매운 눈을 비벼가며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곧 장작에 붙은 불이 안정을 찾고 가마솥을 달구기 시작했다. 아궁이에 장작을 모아놓고 기다리는 동안 동네라도 한 바퀴 돌고 올까 하는데 큰아버지께서 근처에 적천사가 있으니 돌아보라고 권하신다. 적천사는 산중턱에 있는 사찰로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는 조용하고 아담한 절이다. 적천사 명물인 은행나무의 잎은 다 떨어졌지만 겨울에도 나름대로 풍경이 좋으니 한번 가서 보라고 데려다 주신다. 

좁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적천사에 도착하니 주차장처럼 보이는 넓은 터 앞에 [막다른 길. 이제 그만]이라고 쓰인 나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길은 여기까지란 뜻이다. “저쪽에 부도밭도 있다. 천천히 둘러보고 연락해라. 데리러 오마.” 큰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내려가시고 혼자 적천사에 남았다. 

 

차에서 내리자 은행나무가 바로 보인다. 정말 큰 은행나무다. 전설에 따르면 보조국사의 지팡이였던 나무가 800년 세월을 거쳐 이렇게 크게 자란 것이다. 은행잎은 지고 없었지만 큰 나무기둥과 뻗어나간 가지에서 힘이 느껴진다. 

은행나무를 보고 천왕문을 지났다. 어렸을 때는 무기를 들고 화난 얼굴로 내려다보는 사천왕상이 무서워 잔뜩 긴장하고 지났었는데…. 적천사의 사천왕도 부리부리 크게 뜬 눈에 무기를 든 채 악귀를 제압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무차루 계단을 오르니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 옆 약수터에는 돌로 만든 거북이 입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대웅전 앞에는 괘불화를 거는 지주가 있다. 괘불화는 석가탄신일이나 있을 때만 볼 수 있다. 대웅전 외벽을 따라 심우도, 달마, 한산습득, 포대화상, 백의관음이 그려져 있다. 맞은편 종각에는 법고, 범종, 목어와 운판이 비치되어있다. 

적천사는 은행나무가 유명한 절이지만 주변의 소나무도 멋스럽다. 큰아버지가 말씀하신 부도밭이 생각나 그곳으로 향했다. 5층의 건국기원탑과 기념비, 석종형 부도 8기가 나란히 서 있다. 부도밭을 나와 길을 따라 더 올라가 보았다. 비슷비슷한 풍경이 이어지던 길모퉁이에 대나무 숲이 보인다. 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대나무가 빽빽하다. 다른 장소에 온 것 같다. 한겨울이지만 시퍼런 대나무 숲의 분위기가 참 좋다. 좀 더 걷고 싶었는데 나무문이 길이 막고 있다. 문 너머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아마도 스님들의 수행터가 아닐까 생각했다. 

부도밭에 다녀온 사이 대웅전에 예불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예불이 마치길 기다리는데 적천사에서 사찰생활을 하는 분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다. 적천사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여쭈어 보니 지금은 아침 공양 예불시간이고, 적천사 주위에 등산로가 있어 등산객이 많이 찾는단다. 그리고 산속에 도솔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밤에는 불빛이 있어 여기서도 잘 보일 텐데 낮이라 보이지 않는다며 여기서 20~30분 산행이면 갈 수 있다고 방향도 알려 주신다.

예불을 마친 스님이 나오셨다. 예불 드리러 온 거면 한번 들어가 보라 하신다.

간단한 예불을 맞히고 대웅전을 나와 적천사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도솔암으로 향했다.

 

천년고찰 적천사

적천사는 신라 문무왕 4년(664)에 원효대사가 토굴로 처음 건립하였던 것을 흥덕왕 3년(828)에 왕의 셋째아들인 심지왕사가 중창했다. 고려 명종 5년(1175)에 보조국사가 영산전을 세우고 오백성중(아라한)을 모시는 한편 오백대중이 상주하여 참선을 수행하게 해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태허선사가 중수하였으나 조선말에 누각, 요사 등이 다시 병화를 입어 불타고, 근래에 와서 명부전과 누각이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전각으로는 대웅전, 명부전, 조사전, 적묵당, 무차루, 사천왕문이 있다.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402호)

적천사의 은행나무는 높이 28m, 둘레 11m의 암나무로 많은 은행이 열린다. 나무 가지는 동서로 28m, 남북으로 31m로 나무모양이 아름답고, 수세도 왕성하다. 나이는 800년으로 추정되는데 고려 명종5년(1175) 보조국사 지눌이 이 사찰을 중건하고 심었다는 전설에 의거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적천사에는 보조국사의 신통력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백대중이 상주하는 대가람으로 중건할 때 절 부근 숲속에는 도적떼가 살고 있었다. 보조국사가 ‘범 호(虎)’자를 가랑잎에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풀어놓으니 도적떼가 놀라 겁이 나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목조사천왕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

천왕문의 좌우에서 절을 수호하고 있는 사천왕상. 이 사천왕상은 몇 조각의 나무를 이어서 제작한 것으로 높이가 3m 이상인 거상이다. 균형 잡힌 자세와 양쪽 발, 화려한 보관, 갑옷, 지물 등이 정밀하고 세련되게 표현된 작품이다. 사천왕상 속에서 사리, 경판, 의류, 다라니 등의 복장품과 복장기가 발견되어 조선 숙종 16년(1960)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작 당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3호)

대웅전은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을 그대로 주춧돌로 놓고 상부에 배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 초기의 기법도 잘 나타나 있다. 

 

적천사 괘불탱 및 지주(보물 제1432호)

괘불은 불교의식 때 절 마당에 걸어 놓고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제작된 거대한 불화이다. 조선 숙종 21년(1695)에 그려진 괘불탱화의 규격은 1230x530cm이다. 장대한 규모의 적천사 괘불은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이 연꽃가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연꽃대좌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독존도 형식으로 화면 가득히 채워 그린 것이다. 네모진 얼굴과 비현실적으로 묘사된 신체로 인해 묵중하고 중후하다. 얼굴부분이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나 괘불대에 걸었을 때는 상당히 안정적인 느낌이 준다.

가슴의 영락장식, 머리에 화려한 보관, 장식적 도안의 가사 그리고 적·황·녹의 밝은 채색 등은 조선후기 불교문화의 융성을 잘 대변해 준다. 대웅전 앞 두 쌍의 괘불지주에 강희 40년(1701)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 괘불의 사용유래를 알 수 있다.

 

산속의 암자 도솔암

겨우 10분 산행에 숨이 찬다. 뭐가 보일까 싶어 먼 곳을 응시해보지만 보이는 건 나무뿐.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니 바람에 날려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만 들릴 뿐이다.

눈이 와도 사람이 지나는 길은 표가 날 텐데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그 길을 구분하기 힘들다. 이정표가 없는 건지 못 찾는 건지 확신 없이 오르는 길은 걸음마다 망설여진다.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알려주던 스마트폰도 여기서는 무용지물이다. ‘일단 올라가보고 아니면 내려오면 되지.’ 마음을 비우면서도 혹시 길을 잃을까 나무 하나, 돌 하나 꼼꼼하게 보게 된다.

조금 더 오르다보니 도솔암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애매하기만 했던 산행에 발견한 이정표는 사람보다 더 반가웠다. 방금 전과 달리 씩씩한 발걸음으로 올라가니 소나무 숲 사이로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지금까지 보았던 바위들과 크기도 형상도 달랐다. 

마침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있어 여기가 도솔암이 맞는지 여쭤보니 맞다 하신다. 영험한 도솔암에 오셨으니 예불 드리고 가라며 손을 들어 방향을 알려 주신다. 손끝을 따라 가니 저 멀리 암자의 기와지붕이 보였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가는 길에 식수터가 있었다. 여유를 찾으며 목을 축이는데 갑자기 위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백구 한 마리가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컹컹 짖고 있다. 작지 않은 개라 당연히 목줄이 묶여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물 한잔 들이 키고 돌아서니 바로 앞에 와 있었다. 달려들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웠다. 백구의 안내를 받으며 좁은 도솔암의 경내로 들어섰다. 돌과 기왓장로 쌓은 낮은 담장아래 청도 남산의 풍광이 파도처럼 펼쳐쳤다. 선경이 따로 없었다. 

도솔암을 간단히 둘러보고 백구와도 작별을 고하였다. 합장하며 무사히 이곳에 와서 기쁘고 감사하다고, 내려가는 길도 잘 보살펴 주시라 조심스레 빌었다. 그 덕인지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했다. 기온이 조금 오른 탓인지 아침에 봤던 눈이 조금 녹은 느낌이다. 날씨가 좋아 은행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적천사의 전각들도 따뜻한 겨울 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 무차루로 향하는 계단과 계단 사이 봄 야생화인 봄까치꽃이 한 무리 피어있다. 바람피할 곳 없는 청량한 산사에 때 이른 봄꽃이라니…. 문득 예불소리 들려오는 대웅전을 뒤돌아보게 된다. 

적천사에 도착하니 이미 큰아버지의 차가 기다리고 있다.

두부도 맛있게 완성 되었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청도장날이라 장을 보고 돌아보라고 하신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 꼭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김지영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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