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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는 겨울,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떠나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겨울은 거리마다 화려한 장식들로 기분까지 반짝이는 계절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은 한적한 풍경, 겨울바다를 그리워한다. 지나간 계절보다 짧아진 오후 햇살의 반짝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쉽지 않은가? 먹고, 마시고, 볼거리 가득한 포항 구룡포로 떠나보자. 가슴 설레는 겨울바다를 감상하는 것은 덤이다. 

 

“바다라는 것은 좋은 거군요.” 

“그래,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왜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요?” 

“아마 넓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 

(해변의 카프카中)

 

포항 구룡포는 경상북도 동해 최대어업산지의 명성답게 주말이면 이곳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조용한 어촌마을에 불과했지만 새로운 볼거리와 먹거리가 늘어남으로써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겨울바다의 대표적인 장소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길 몇 차례, 열린 창으로 들어온 새로운 풍경과 바다 냄새에 여행의 설레는 기분이 깨어난다. 잔잔한 바다에 정박한 어선과 바닷바람에 말라가고 있는 과메기 덕장, 취~익하고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줄지어선 상점들, 겨울 맛을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상점 주인들의 열기가 더해져 구룡포 일대 거리는 활기로 가득하다. 근대문화역사거리를 찾은 관광객들까지 많아지면서 구룡포에 생기가 더해진다.

포항 구룡포에서 제일 인기 있는 장소는 구룡포길 143번, 근대문화역사거리이다. 최근 KBS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구룡포는 예부터 수심이 깊고 깨끗하여 수산자원이 풍부한 어장이다. 1923년 하시모토 젠기치가 조선총독부에 건의하여 구룡포항에 방파제를 만든 후 수산물의 반입과 반출이 용이해지자 가가와현과 인근의 내해에 고기가 잘 안 잡혀 생활고를 겪는 일본어민들을 구룡포에 이주시켰다. 그렇게 조성된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는 조선 어업권을 수탈한 아픈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구룡포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종전 후 일본인들은 떠나갔지만 남겨진 거리는 이곳에 존재했던 ‘사람’과 ‘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450m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일본식 적산가옥들은 빈곳과 낡은 곳이 많지만 당시의 느낌은 그대로 전해진다. 또한 100여 년 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가옥 곳곳에 붙어있어 현재의 모습과 비교 할 수 있다.

근대문화역사거리의 대표적 상점 후루사또야

‘고향집’이라는 뜻을 가진 ‘후루사토야’는 1924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물인데 그 당시엔 유명한 음식점 ‘일심정’이었던 것이 지금은 다다미방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일본식 전통 찻집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일본전통의상을 체험할 수 있는데 거리마다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은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기에 바쁘다. 전통가옥들과 전통의상의 어우러짐 때문에 과거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옛 생각하며 들르기 좋은 ‘추억상회’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의 구멍가게인 추억상회. 어른들에겐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에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주는 구멍가게인 셈이다.

거리의 제일 중앙, 구룡포 공원을 오르는 계단 양쪽으로는 120개의 돌기둥이 세워져있다.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을 새겨 세워둔 것을 일본이 패망하고 떠난 뒤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를 발라 거꾸로 세운 후 1960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이름을 다시 새겨 넣었다고 한다. 

 

가파른 역사의 계단을 오르면 구룡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다다른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지역명의 유래처럼 힘든 과거를 잊고 하늘로 오르는 구룡의 힘찬 의지가 엿보인다. 

 

공원에서 한적한 작은 골목길을 따라 근대역사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현재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대문 앞에 꽃피운 작은 화분과 빨랫줄에 차례대로 줄지은 오징어, 골목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벽화까지…. 길을 알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소박한 풍경들이다.

100년의 역사 ‘근대역사관’

근대역사관은 정어리 통조림 사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하시모토 젠기치의 2층 목조주택을 포항시가 매입하여 역사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디딤돌이 현관까지 이어지고 정원의 나무들은 푸르른 계절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손질되어 있으며, 깨끗이 쓸어놓은 정원에는 나뭇잎 하나 떨어진 게 없다. 매우 정성을 들인 정원이다. 

 

1층에는 100년 전 일본 어부들이 구룡포에 정착하게 된 상황과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전시돼 있다. 부츠단(조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일본 전통가옥에 마련된 불단)과 고다쯔(일본의 실내 난방장치의 하나), 부엌 등 당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다. 2층에는 녹이 슨 재봉틀과 다리미를 비롯한 유물들이 세월을 드러낸 채 전시돼 있고 포항의 대표 독립운동가, 포항의 3.1운동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공수하여 지은 주택으로 큰 다다미방과 벽에는 서예족자와 일본화가 걸려있는 전형적인 일본식가옥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난간과 계단은 만지기만 해도 손자국이 날만큼 반질반질하게 닦여 있고 둥글게 마모된 마루복도는 밟을 때마다 오랜 시간동안 스며든 바다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듯하다.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창을 통해 바라보는 구룡포항이 두 눈에 일렁인다. 근대문화역사거리 곳곳에는 느린 우체통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나가는 사람들 모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편지를 쓰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힘들고 아팠던 시간들을 모두 지켜봐온 구룡포 바다는 현재 이 거리에 서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오늘따라 겨울빛을 머금은 파도가 더 잔잔하게 느껴진다.

이명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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