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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협곡열차

분천역에 도착하다

봉화군으로 접어들어 36번 국도를 따라 분천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8시 정각. 급하게 주차를 하고 분천역을 향해 뛰었다. 승차표가 없다면 무임승차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다행스럽게 빈 좌석이 있어 표를 구매하고 역사를 돌아본다. 작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역사가 동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 새벽부터 달려온 길이라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밀려왔다. 시간도 보내고 속도 풀 겸 식당에 들어가 북어탕을 시켜놓고 주인장과 난로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은 본래 옛날 경찰지서였던 곳으로 지금도 담장에는 순경이 총을 겨누던 네모난 구멍이 있었다. 한때 이 마을은 벌목한 나무를 옮기던 목도꾼이 머물러 당시 제법 많은 인구가 있었지만 목도꾼도 화전민도 다 떠난 뒤 그야말로 공허한 산골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분천역 둘러보며

분천역은 한국 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 한 역이다.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에 위치한 분천역은 낙동강의 시발이 되는 곳이기도 하며, 현동역과 양원역 사이에 있는 영동선의 기차역으로 1956년 1월 1일 개시되었다.

역명은 여우천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해서 ‘부내’라고 불리던 것이 일제 강점기 당시 한자화 돼 ‘분천’이란 지명을 얻었다. 원래 역사가 없는 곳이었지만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운영되면서부터 1일 1,000여 명 가까이 찾는 관광명소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70년대 상업적 벌채가 번성하던 시절, 그 귀했다는 금강송들로 가득했던 이곳. 이제는 ‘그랬다더라.’는 흔적만 간직한 채 줄지어 앉은 모습 속으로 추억이 아른거린다. 역 주변에는 그린스퀘어 자전거대여 서비스와 카셰어링 유카가 마련돼 있어 트레킹이나 자전거, 자동차를 대여해 주변을 관광할 수도 있다.

스멀스멀 기차가 역사로 진입한다. 첫 백호무늬를 한 열차와 관광을 위한 열정을 담은 기차의 와인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백두대간 골짜기를 다 담을 듯한 기차가 역사로 들어와 출발을 대기한다.

분천~철암 편도 요금이 8,400원, 총 27.7km를 2회(토요일은 3회) 왕복 운행한다. 운행시간보다 간이역에서 하차하여 머무는 시간이 더 많고, 달리는 속도가 느려 철암역까지는 약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 

 

분천역 출발하다

열차는 분천역을 떠나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간이역을 가진 코스를 따라 이동 하면서 협곡의 비경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속도가 겨우 30km 내외, 창가에 앉아서 황지연못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 풍경을 렌즈에 담을 여유가 충분했다. 곳곳에 낙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작은 터널을 통과하면서 잠시 밤의 정적을 그려내기도 한다.

역 구내 입환용으로 사용하였던 4400호대 기관차는 백호의 상징인 줄무늬를 도색하고 내부와 외부는 와인색상으로 칠해 차량 3개를 연결했다. 친환경 지역을 달리는 만큼 열차에는 에어컨이나 난방히터, 안락한 의자, 화장실마저 없다. 추위를 덜기위해 석탄난로를 칸마다 놓아두었고, 환기를 위하여 사람 앉은키보다 약간 위쪽에 창을 열도록 만들어 두었다. 화장실은 중간 중간 간이역에서 해결해야 한다. 산간지대를 달리다 보니 낙석과 산을 통과하는 터널이 많은데, 그때마다 기차 천장의 야광조명이 켜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양원역 도착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대합실’이 있는 양원역은 낙동강을 기준으로 봉화군과 울진군의 경계 지점이다. 내리자마자 천막 아래 ‘막걸리 한잔 천 원’이 눈에 들어온다. 특산물을 파는 곳이라 하여 승객들이 앞 다투어 장터로 몰려가 보지만 다들 농산물 구입보다 먹거리에 더 성의를 보인다. 막걸리 주인은 “시간이 있다며 돈 내고 마시라.”며 짓궂게 흥을 돋운다.

약 2평 정도의 대합실이 전부인 양원역을 누가 이용하는지 궁금했지만 둘러봐도 인근에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는 역사가 없어 승부역까지 걸어서 기차를 이용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직접 대합실, 화장실을 만들고 이정표도 세워 1988년 4월, 영동선 개통 33년 만에 정차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에게는 뜻 깊은 역사이자 최초의 민자역사로 아름다운 의미가 있는 역이기도 하다. 

양원 주민들이 관광객을 위해 임시로 여는 작은 장터에는 천 원짜리 막걸리를 포함해 감주, 감자떡, 찐빵, 옥수수, 잔치국수, 군고구마 등을 맛볼 수 있다. 양원역에서부터 열차 안은 순식간에 먹자여행을 바뀐다. 가져온 먹거리를 꺼내놓고 먹는 사람, 군고구마를 먹는 사람, 철도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귤과 김밥 그리고 삶은 계란을 먹는 사람들로 왁자지껄 흥겹다. 그리고 열차는 낙동강을 곁에 두고 본격적인 협곡속으로 점점 가속도를 낸다. 

 

승부역에서 하차하다

승부역에 첫 발을 딛는다. 승부역은 1999년 환상선 눈꽃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주목 받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승차권을 발매하지 않는다. 탑승한 승객은 기차를 탄 후 알아서 승무원에게 승차권을 구입해야 한다.

승부역에서 혼자 내렸다. 구경하기 위해 잠시 내렸던 여행객은 기차와 함께 종착역인 철암역으로 떠나갔다. 눈은 부슬부슬 내리는데 홀로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안내판을 찾아보니 이승만 기념비를 시작으로 정상인 투구봉을 산책하는 약 1.5km 구간 산길과 식당가 앞 물레방아 그리고 용관바위가 있었다. 하지만 일정이 빠듯하여 할 수 없이 냇가를 따라 주변만 둘러보기로 하였다.

 

승부역 주변 산책

승부역은 1955년 12월 3일 영암선 개통 기념식에 참가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친필 휘호인 영암선기념비와 승부다리 그리고 승부눈꽃식당촌이 몰려 있다. 출발하기 전 이곳에는 차량 진입 허락되지 않아 하늘을 나는 새와 기차를 타고 내린 사람에게만 허락된다고 하였는데 어찌된 것인지 차량이 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석포역에서 낙동강변을 따라 들어오는 비포장길이 있었고 그 길의 끝이 승부역 이였다.

 

철암역

승부역과의 아쉬운 조우를 뒤로하고 다음기차에 올라 철암역으로 향했다.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이동하면서 승부역과 철암역에서 가장 많이 하차를 하는데 주변에 볼 것은 철암역이 좋으며, 계곡에서 머물다 가기는 승부역이 좋다. 역에서 넉넉하게 머물다 오려면 기차시간표를 잘 조율하여 승차하면 된다. 

협곡열차의 종점인 철암역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간이역과는 달리 확연히 규모를 갖춘 역이다. 석탄 산업이 호황기에 있던 시절 수많은 승객들을 실어 나르던 철암역사를 비롯해, 일제강점기(1935년)에 만들어져 지금도 여전히 가동 중인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시설 ‘철암역 두선탄장’을 만날 수 있다. 두선탄장은 살아 있는 석탄박물관으로도 불리고 있으며 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돼 있다.

철암역 탄광역사촌(갤러리) 

탄광역사촌은 1960~70년대 탄광촌의 모습과 까치발 가옥을 보존 및 복원해 놓은 곳으로, 주인이 모두 떠나고 허름한 간판만이 남았다. 밖에서 보면 폐점한 가게처럼 보이지만 건물 내부에는 철암의 옛날을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공간이 펼쳐져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남수퍼’는 현대적 회화를 전시하는 갤러리가 됐고, 중화요리 ‘진주성’은 특산물 판매점으로 태어났다. 1970년대에는 길가에 지나는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을 정도로 굉장한 부촌이었지만 우리나라 석탄산업이 사라지면서 폐촌으로 변해버렸다. 탄광촌에서 1~2년만 일하고 외지에 나가면 가게를 하나 차릴 수 있는 돈이 모였다고 하니 부유하고 활기가 넘쳤던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이곳 철암지역은 고기가 좋기로 유명한데, 석탄가루 배출 때문에 삼겹살 등을 많이 소비하면서 고기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철암장터 

1970년대 상설시장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철암장터에는 광부의 부인들이 막장에 들어가는 남편 운을 점치기 위해 무당집을 많이 찾아 다녀 시장 안에는 무당집이 성행하였고, 지금의 서울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처럼 노점상도 많아 난전이 철암역까지 길게 이어져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설렁한 시장골목과 그사이를 간간히 지키고 있는 노인들만이 번창했던 과거를 기억해낼 뿐이다.

안정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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