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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천재들의 비밀』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 그들의 업적은 과연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맹신하는 조기교육(혹은 조기전문화)의 결실이었을까?

고흐는 자신의 화풍을 완성하기까지 미술상, 교사, 서점 점원, 유망한 목사, 순회 전도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페더러는 어릴 적 각종 구기종목을 비롯해 스쿼시, 레슬링, 수영, 스키, 스케이트보드 등 여러 스포츠를 즐겼고 10대에 들어설 무렵에야 테니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생이 꽃 피기까지 그들은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고 꾸준히 한 우물만 판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기저기 한 눈을 팔면서 자신의 적성에 대해 충분히 탐구하는 ‘샘플링’ 시간을 거쳤다.

나의 길을 찾는 샘플링 기간

우리는 인생 성공 전략은 조기교육, 즉 누구보다 일찍 전공을 정하고, 그 일에만 집중해 능률을 극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간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의 저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다양한 사례와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조기 교육의 신화를 깨뜨리고 이를 맹신하는 세태에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방대한 문헌과 대면 인터뷰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운동선수, 예술가, 발명가, 미래 예측가, 과학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각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사람들은 일찍이 협소한 분야에 집중적인 훈련을 쏟아 부은 ‘올깎이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지적 호기심을 지닌 ‘늦깎이 제너럴리스트’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의 주장의 핵심은 “인생의 성공은 빠른 출발(조기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관심 영역을 폭넓게 탐사하는 기간(샘플링)이 좌우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폭넓은 경험을 쌓고 늦게 시작하라’는 말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조기교육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상당수의 운동 선수들은 우즈의 방식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유·청소년 시절 동안 훗날 자신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분야에 쏟은 시간이 준엘리트 선수들에 비해 적었다. 대신 페더러가 그랬듯 준비되지 않은 환경에서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는 샘플링 기간을 거쳤다. 이는 ‘우즈 방식’보단 ‘페더러 방식’이 성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기 교육이라는 신화 깨기

조기교육의 맹점은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다는 점이다. 전문가는 경험을 통한 학습은 완벽하게 할 수 있지만, 경험한 세계 그 이상을 보진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도전 과제가 명확하지 않고 엄정한 규칙도 없는 ‘사악한 세계’를 살고 있다. 이는 곧 불확실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에겐 다양한 경험을 엮고 새로운 개념들을 연관 짓는 종합적 문제 해결 능력, 즉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역량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특히 반복을 통해 금방 습득할 수 있는 ‘닫힌 기능’을 조기교육을 통해 가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모든 아이들은 자연히 그 기능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조기 교육은 아이에게 좀 더 일찍 걸음마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걸음마를 일찍 떼는 것이 성공 요건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장기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단기적인 성취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단기간에 성적을 높여주는 쪽집게 교사보단 제자에게 산파술을 통해 진리를 설파한 소크라테스가 더 훌륭한 선생이 아니겠는가. 제자들에게 고기를 잡아주기보단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 소크라테스의 학습법은 제자로 하여금 훗날의 혜택(장기적 성공)을 위해 현재의 수행 성과(단기적 성취)를 의도적으로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저자가 우리 시대 필요한 인재는 늦깎이 제너럴리스트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전문가들이 다른 분야에 담을 쌓고 있는 동안, 인공지능(AI)은 과거엔 한 분야만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갖추었을 전문 기술을 습득해 가며 그들보다 더 나은 전문가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능력이 따라잡지 못할 인간은 바로 전문가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라는 것이다.

사회 통념상 ‘늦깎이’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히려 소소한 실패는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은 우리 내면에 고스란히 축적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생의 전환점에서 갈 길을 잃은 독자들에게도 큰 가르침을 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경구를 소환하며 모두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464쪽. 2만원.

권혁구 출판전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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